서울의 국민평형(84㎡) 분양가가 10억 원을 돌파하면서 고분양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도권의 2조 원 대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시행사가 가져가는 이익이 무려 3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와 각종 금융비용도 2900억 원에 달해 분양가 폭등 원인의 상당 부분이 업계의 탐욕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수도권의 한 대형 개발사업 사업수지표에 따르면 해당 시행사는 지난 달 공동주택과 오피스텔·오피스·상가 분양을 통해 약 2조2000억 원 대의 수입을 예측했다. 사업수지표는 대외비로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3.3㎡) 3100만 원이 넘는다.
지출 측면에서는 국공유지와 사유지 같은 토지 구입비용 6900억 원(약 31.4%), 공사비로 6500억 원(약 29.5%)가량이 책정됐다. 제세공과금(860억 원)과 분양경비(260억 원), 기타 수수료(460억 원) 등이 예상됐다.
시행사, 개발 뒤 가져가는 돈 수입의 약 13.6%…PF 이자(13.2%) 더하면 30%가량이 외적 비용
문제는 시행사의 이익과 부동산 PF 비용이다. 개발 뒤 가져가는 돈만 3000억 원으로 전체의 약 13.6%에 달한다. 토지구입비에 쓰이는 사실상의 신용대출인 브릿지대출 이자와 PF 전체 금융비용은 2900억 원(약 13.2%)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됐다. 둘만 합쳐도 5900억 원, 총 수입의 30% 가까운 금액이 공동주택이나 오피스 건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개발업체 주머니와 금융사 이자로 나가는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수분양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시행사들이 지는 위험 대비 이익이 너무 높은 게 사실”이라며 “최소한 토지구입비는 사업자가 대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금융사에서 빌려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시행사들은 총 사업자금의 5~10%만 갖고 사업을 시작한다. 미국의 경우 시행사와 유동성공급자(LP)들이 총 사업비의 20~30% 수준의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며 네덜란드와 일본은 시행사와 투자자가 사업자금의 30% 이상을 부담한다. 국내 PF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을 갖고 사업을 하면서도 수천 억 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시행사의 이익이 과도하다는 점은 공사비와의 비교에서 두드러진다. 앞서 2조2000억 대 규모의 개발사업에서 평당 직접 공사비는 약 500만 원 수준이다. 평당 분양가가 3100만 원이 넘는데 이중 직접 공사비 비중은 약 16%에 불과하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4% 수준의 시행사 이익률은 약과이며 더 높은 것들도 있다. 이런 것이 부동산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했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시행사가 돈을 버는 게 무슨 문제냐는 반론이 나온다. 회계법인의 한 고위관계자는 “극단적으로 50억 원을 넣어서 5000억 원을 벌 수도 있는 게 시행사업”이라며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익률이 높다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한 부동산 값과 아파트 가격이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7월부터 9월까지 서울에서 분양한 민간아파트 단지 10곳 가운데 84㎥ 분양 물량이 없던 단지를 빼면 84㎥ 분양가가 10억 원 미만인 곳은 ‘둔촌 현대수린나’ 1곳에 불과했다. 경기도 광명뉴타운에 들어서는 ‘트리우스광명’의 84㎥ 분양가가 11억8600만 원(최고가 기준)에 책정됐는데 이는 평당 4660만 원 꼴이다. 최근 들어 계속된 고분양가에 미계약 단지가 증가하고 경쟁률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절대금액(분양가) 자체가 높으며 그 이유의 적지 않은 부분이 시행사의 과도한 이익과 PF 금융비용인 셈이다.
실제 가계소득이 제한적이다.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29세 가구주의 전년도 연 가구소득이 평균 3948만 원이다. 분양가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고 25년 이상을 모아야 한다. 30대(6926 만원)와 40대(7871만 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직 금융감독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젊은이들이 내집마련을 포기하고 있고 서울 아파트 분양가가 10억 원에 달하는데 부동산 시행은 원래 돈 많이 버는 것이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갖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행사들이 적은 자기자본을 갖고 금융사의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 보니 연쇄 부실의 빌미가 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금융사들의 PF 연체율은 △증권사 17.28% △저축은행 4.61% △여신전문 3.89% △상호금융 1.12% 등이다.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 주도로 현재 187개 사업장이 대주단 협약을 통해 신규자금 지원, 만기연장, 이자유예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부실 우려 사업장에는 2조2000억 원 규모의 정상화 펀드가 투입된다. 금융계의 고위관계자는 “시행해서 돈을 많이 벌 때는 다 가져가는데 경기가 둔화해 부실이 커지면 결국 정부가 나서 이를 이자를 깎아주고 만기연장을 해준다”며 “누가 위험을 지려고 하겠느냐”고 밝혔다.
건설사들이 시행사를 직접 차린 뒤 지급보증을 서 오너 가족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브릿지론을 받겠다고 오는 시행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업체가 시공사와 특수관계에 있거나 직원을 내세우는 곳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시행과 건설, 양쪽에서 이익을 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지속적인 분양가 상승과 반복되는 PF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부동산 PF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1차로는 시행사의 자본요건 강화가 거론된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현재 전체 금융사 중 저축은행만 PF 대출 실행 시 시행사에 자기자본 20%를 요구하고 있다. 이보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부동산 개발 시행사는 자금력이 부족해 브릿지론으로 토지를 구입한 뒤 본PF 자금으로 이를 상환한다”며 “시행사의 자본요건을 강화하고 시행사업에 재무적투자자(FI)들의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FI들이 들어올 경우 분양가가 반드시 낮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처럼 2금융권에 전적으로 의존할 때보다 조달 방법이 다양해지고 그에 따른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 세제를 통해 부동산 개발사업의 과도한 이익을 회수해 주거복지 등에 쓰는 아이디어도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영국은 에너지 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해 최대 45%의 세율을 적용한다. 독일은 33%의 세율을 매긴다.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시행사의 자본요건을 강화하면 개발사업이 위축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면서도 “현재 PF 모델은 금융사 부실 전이 및 분양가 상승 요인이 되는 등 단점이 드러난 만큼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