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를 무대에 올린 EMK뮤지컬컴퍼니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며 단번에 큰 성공을 거둔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분쟁을 겪고 있던 김준수가 극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등장하면서 흥행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이었다. 2002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 뮤지컬계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오페라의 유령’이 있다면 뮤지컬 산업의 판도를 바꾼 작품으로는 2010년 ‘모차르트!’가 꼽히는 이유다. EMK뮤지컬컴퍼니는 그 뒤로도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웃는 남자’ 등의 히트작을 선보였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EMK뮤지컬컴퍼니는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 통한다.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를 통해 소위 뮤지컬을 보는 ‘맛’을 선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울 강남구 EMK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지원(49) EMK엔터테인먼트 대표 겸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는 EMK뮤지컬컴퍼니의 설립부터 현재를 함께하는 경영인이다. 김 대표는 엄홍현 현 대표와 함께 2009년 EMK뮤지컬컴퍼니를 설립했다. 2004년 공연 기획사 다인컬처를 설립했지만 2년 만에 실패를 겪은 그는 엄 대표와 공연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어떤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일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적어도 한 번은 우리가 정말 원해서 하고 싶은 작품을 올린 다음, 그래도 잘 되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박 신화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모차르트!’의 제작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양대 뮤지컬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의 작품들은 기존 한국 제작사와의 관계가 공고한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눈을 돌려보니 ‘엘리자벳’이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저는 뮤지컬 전공자가 아니어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엘리자벳’이 생소했다”면서 “이후 ‘모차르트!’를 관람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이 작품을 더 보고 싶어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비엔나극장협회(VBW)로부터 ‘모차르트!’와 ‘엘리자벳’ 라이선스를 얻어올 수 있던 것도 이런 ‘선택과 집중’이 성공한 덕분이었다. 그는 “전 세계가 모두 아는 콘텐츠인 모차르트를 통해 비엔나 뮤지컬을 향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낸 후 ‘엘리자벳’이 두 번째 작품으로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같은 접근 방식이 통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부대표를 맡고 있는 EMK뮤지컬컴퍼니에서 판권 계약 및 2차 사업을 포함한 해외 사업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라이선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전 세계 공연 배급권을 획득하거나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일본 최대 극단 다카라즈카에 한국 작품 최초로 수출한 것이 그가 거둔 값진 성과다. 실질적인 제작과 대관 사업을 엄 대표가 맡는다면, 김 대표는 콘텐츠를 찾거나 기획·홍보·마케팅 등을 전담한다.
영상화 사업은 김 대표가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 중 하나다. 그는 “영상화 사업은 EMK가 앞으로 꾸준히 가져가야 하는 사업 중 하나”라면서 “해외로 수출되는 작품들은 사실상 소극장 위주인 상황에서 대극장 공연을 어떻게 해외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이 영상화 사업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사업은 뚜렷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뮤지컬 배우 조규현·임선혜 등이 출연한 뮤지컬 ‘팬텀’이 ‘팬텀: 더 뮤지컬 라이브’라는 제목으로 미국·캐나다·독일·핀란드·멕시코 등 전 세계 88개 도시의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김 대표는 뮤지컬 배우 소속사 EMK엔터테인먼트의 대표직도 함께 맡고 있다. 그는 배우들이 하나둘 뮤지컬 작품에 대해 조언을 청하기 시작한 것이 2010년 EMK엔터테인먼트 설립의 시초가 됐다고 말했다. 차기작을 두고 고민하던 배우들이 틈틈이 국내외 뮤지컬 작품을 둘러본 그의 선구안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소속사의 중책을 동시에 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카이·민영기·에녹 등 명배우들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소속사 대표이기도 하다. “요즘은 경계가 없어지는 추세이다 보니 배우들도 뮤지컬뿐 아니라 방송을 넘나들면서 관리해야 할 영역이 확장되더라고요. 또 때로는 제작자 입장에서 말해야 하고, 때로는 소속사 입장에서 말해야 해서 두 가지 일이 상충할 때도 많지만 균형을 잘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MK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신인 배우도 영입하면서 매니지먼트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기존에는 유명한 배우들 위주로 영입해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공연 사업이 성장을 거듭하다 보니 좋은 배우들을 양성할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코로나19 시기부터 신인 배우를 적극적으로 계약해 뮤지컬 업계에서 풍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MK뮤지컬컴퍼니와 EMK엔터테인먼트의 가파른 성장에 김 대표의 노력과 헌신이 바탕이 되고 있다. 2004년 공연 업계에 뛰어든 후로 김 대표는 10년이 넘게 제대로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EMK의 성장에 대해서도 “일이 좋아 열심히 뛰다 보니 어느 날 앞에 있었다”고 묘사했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 엄 대표와의 끈끈한 파트너십은 ‘장거리 달리기’를 위한 원료가 됐다. “엄 대표님이 제작에 전념하면 저는 해외에 이걸 어떻게 수출하지 생각을 하는 거죠. 제가 해외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거나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전폭적으로 지원해줍니다.”
EMK뮤지컬컴퍼니는 남은 한 해도 쉼 없는 스케줄을 이어갈 예정이다. 올해 초부터 대규모 창작 뮤지컬 ‘베토벤’을 선보인 EMK뮤지컬컴퍼니는 올 연말 창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를, 내년 여름 ‘4월은 너의 거짓말’을 공연한다. 최근에는 뜻깊은 일을 겪기도 했다. 라이선스 뮤지컬인 ‘레베카’가 10주년을 맞이해 EMK뮤지컬컴퍼니 제작 작품 최초로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영화의 ‘1000만 관객’보다는 낮지만 가격이 높고 재관람이 쉽지 않은 뮤지컬 공연으로서는 의미 있는 수치다.
어느덧 뮤지컬 산업에 종사한 지 15년. 바쁜 일정 속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말한 김 대표는 명확해진 EMK의 방향성을 꿈꾼다. “EMK의 ‘K’는 제 이름 ‘김’에서 따온 거예요. 저는 제가 없는 EMK를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EMK뮤지컬컴퍼니가 설립 10주년이 되고 일본 도호 관계자를 만났는데 10주년이라는 말에 ‘축하한다. 우리는 내일 모레면 100주년’이라고 하더라고요. 회사가 100년이 되는 건 한 개인 차원의 일이 아니잖아요. 앞으로는 내 성과보다 EMK가 가야 하는 길과 결과물이 중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