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 2·4위인 일본 기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합병 추진 방안에 대해 SK하이닉스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최근 일본 주요 언론들은 “SK하이닉스의 견제로 기옥시아와 WD 합병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를 이어왔다.
SK하이닉스는 26일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이번 합병으로 당사가 기옥시아에 투자한 자산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당 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양 사 합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부연 설명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현재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은 단계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기옥시아와 맺은 비밀 유지 계약에 따라 완곡한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털이 기옥시아를 인수할 때 베인캐피털 펀드에 3950억 엔(약 3조 6000억 원)을 투자했다. 2660억 엔은 베인캐피털 펀드에 출자하고 나머지 1290억 엔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 형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 초 간접 투자금과 CB를 더해 “SK하이닉스가 가진 기옥시아 지분을 보통주로 전환하면 약 40%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 사 합병이 단행될 경우 SK하이닉스로서는 통합 회사에 대한 지분 희석이 불가피하고 훗날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SK가 이 같은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설령 합병에 찬성한다고 해도 우리나라나 중국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기준 올 2분기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1.1%), 기옥시아(19.6%), SK하이닉스(17.8%), 웨스턴디지털(14.7%) 순으로 합병이 성사되면 세계 1위 낸드 업체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