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작년 12월에 필수의료 대책으로 내놓고 감감무소식인 내용입니다. 1년이 다 되어서 마치 새로운 정책인 양 발표가 됐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오른답니까?"
보건복지부가 26일 제21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한 분만수가 개선 방안을 접한 오상윤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총무이사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며 탄식을 터뜨렸다.
이날 복지부는 산부인과 폐업과 분만 기피를 막고 지역사회의 분만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2600억 여원을 들여 '지역수가'와 '안전정책수가' 등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전 지역 의료기관에 '지역수가' 55만 원을 보상하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근하며 분만실을 보유하는 경우 '안전정책수가' 명목으로 분만 건당 55만 원을 추가로 보상한다는 골자다. 여기에 산모가 고령이거나 합병증이 동반될 경우 적용되는 '고위험 분만 가산'도 기존 30%에서 최대 200%까지 확대한다고 예고했다. 현재 종별 가산을 포함해 기본 79만 원 상당인 자연분만 수가를 예로 들면 지역수가와 안전정책수가가 붙고, 산모가 고위험군이거나 응급 분만일 경우 최대 154만 원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단순 비교하면 자연분만 1건당 분만수가가 최대 4배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 같은 대책이 발표되자 대한의사협회도 입장문을 내고 “저출산 시대 분만을 비롯해 붕괴 위기에 빠진 산부인과 뿐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의사 회원들이 환자를 진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수혜를 받게 될 분만 병원들의 반응은 떨떠름하기만 하다. 어찌된 영문일까. 이번 발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복지부가 작년 12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에서 발표했던 필수의료 지원방안(초안)에 담겼던 내용들이다. 기존 분만수가의 100%에 해당하는 지역수가를 신설하고 병의원급 신생아실 입원료를 인상하는 안도 담겼다.
올해 1월 이를 확정해 발표하기까지 했는데, 10개월이 지나도록 현장에서는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었던 실정이다.
올해 26년차 분만의인 오 이사(예진산부인과 원장)는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분만수가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점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수가를 4배 이상 올린다는 표현은 생색내기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현행 수가 자체가 원가를 보존하지도 못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17년째 분만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개원할 당시만 해도 시흥시 안에 분만 병의원은 7개였다. 그런데 17년이 흐르는 동안 하나둘 분만실 운영을 중단하니 이제 그가 운영하는 분만병원 한 곳만 남았단다. 그사이 시흥시 인구는 45만 명에서 65만 명으로 20만 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출산율이 낮아지고, 고위험 산모가 늘어나는 등 분만 관련 사고 위험이 급등하다 보니 아무도 수익이 나질 않는 분만실 운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에 따르면 현재 초산 제왕절개 분만비는 대략 250만 원이다. 동일 기준을 적용했을 때 미국에서는 1만7000달러, 일본은 70만 엔을 번다. 당장 4배가 올라도 해외 수가들과 격차가 크다. 그는 "무조건 수가를 올려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대책 발표 이후 분만병원 1인실 병상 요건 완화 등 시급한 현안을 빨리 실행해 달라고 요청해도 답이 없더니 애초부터 1년이 지나 실행할 계획이었던 모양"이라고 씁쓸해 했다. 그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분만이 가능한 병의원은 120곳 남짓이다. 자고 일어나면 분만실을 접는다고 할 정도로 이탈이 빈번해 그리 정확한 통계는 아니란다.
그는 "지방자치단체나 복지부가 내놓는 정책들 중에는 현장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며 "산과 지원자가 거의 없고 기존 병의원들마저 폐업하는 가운데 분만 현장을 지키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기약 없는 공수표를 던지지 말고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