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에 특수를 누린 e커머스 기업들이 한 차례 상장 타이밍을 놓친 후 기업공개(IPO)를 다시 준비하고 있지만 고금리 시대가 장기화하자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야 할 신세로 전락했다. SSG닷컴의 대주주인 신세계(004170)나 컬리에 투자한 앵커PE 등 사모펀드들도 재무 부담은 커지는데 투자금 회수가 난망해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쓱닷컴은 내년 3~4월 본격적인 IPO 절차에 들어가려 미래에셋·씨티글로벌마켓증권 등 주관사들과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인영 쓱닷컴 대표는 최근 한국거래소를 찾아 내년 상장 가능성을 가늠해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쓱닷컴이 여전히 적자인 데다 글로벌 긴축의 시간이 길어져 내년 상장 시 최대주주인 이마트(139480)의 시가총액(2조 154억 원)을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지적에 상장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쓱닷컴은 2021년 10월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이듬해 증시에 입성하려 했으나 10조 원가량의 몸값을 노리며 상장을 미뤘다.
쓱닷컴의 영업손실은 2020년 469억 원에서 지난해 1112억 원으로 급증했는데 올 들어서는 비용 절감에 주력해 상반기 영업손실이 340억 원으로 줄기는 했다. 다만 이 같은 실적으로는 내년 상장을 추진해도 당초 기대한 기업가치에는 크게 미달할 것으로 IB 업계는 추산한다.
컬리와 오아시스·11번가 등도 상장을 시도했다가 줄줄이 중도 포기하거나 연기했다. e커머스 업계 ‘상장 1호’로 관심을 모았던 컬리는 거래소의 상장 예비 심사를 지난해 통과했지만 적자가 계속 누적돼 올 초 상장을 연기했다. 하지만 한때 3조 원에 달했던 컬리의 기업가치는 현재 1조 원 안팎으로 급락한 데다 재무 부담도 커져 내년에도 IPO를 마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컬리는 5월 홍콩계 사모펀드인 앵커PE 등이 1200억 원을 추가 투자하며 회생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올해도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으로 컬리와 경쟁하는 오아시스도 2월 일반 청약을 하루 앞두고 상장을 철회했다.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이 부진했던 탓인데 최근 재무적투자자(FI)들과 스팩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을 검토하고 있지만 몸값을 충분히 인정받기 어려워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투자자들과 약속한 상장 기한을 넘긴 11번가는 최근 매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대주주인 SK스퀘어(402340)가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를 거느린 큐텐의 투자를 받아 공동 경영을 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다만 큐텐과 11번가의 합작이 쿠팡의 시장 지배력에 대항해 유의미한 기업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에 큐텐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 e커머스 기업들이 쿠팡에 짓눌려 경영 개선과 상장 재추진이 만만치 않게 되자 패션 전문 플랫폼인 무신사가 e커머스 업계 ‘상장 1호’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무신사는 6일 자사주 5만 8000주 소각을 결정했는데 이는 기존 주주의 실질 지분율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상장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실제 무신사는 2019년 세쿼이아캐피털로부터 1000억 원을 투자받을 당시 2024년까지 상장을 약속했다. 국내 1위 패션 플랫폼인 무신사는 2012년 설립 이후 10여 년간 흑자 기조를 지속하고 있으며 7월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KKR 등에서 2000억 원을 투자받을 때 3조 5000억 원의 몸값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