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술수’로 상징되는 마키아벨리 ‘군주론’ 등의 영향을 받아 우리는 권력이 특별한 사람이 가진, 특별한 제도이자 능력이라고 간주한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힘이라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근본적으로 나쁜 것이며 부패하기 쉽고 보통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누리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으로 심지어 이들은 잠재적인 악당이라고 여긴다.
최근 번역된 ‘수평적 권력(원제 Horizontal power)’에서 저자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권력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고 권한도 권위도 아니라고 말한다. 영향력과도 다르며 부, 명예, 카리스마, 야망, 매력 등과도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권력의 수평성’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의 권력을 갖고 있다. 특히 권력은 서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자원”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은 모든 사회적 역할과 관계에 존재하며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는 권력자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데버라 그룬펠드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로 그의 새로운 권력론인 ‘권력의 본질과 역할’은 지난 25년 동안 연속으로 이 대학 최고 명강의로 꼽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군주론’을 시작으로 그동안 권력을 다룬 기존의 책들은 어떻게 해야 권력자가 되는가, 혹은 위대한 권력자들은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고 행사했는가에 주로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기존 이론에 반기를 든다. 저자 주장의 기본 전제는 부정적인 권력남용 여부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대개 강한 반대의사를 표현하지만 반대로 긍정적으로 권력을 ‘제대로 쓰는’ 것은 어떤 의미냐는 것이다. 권력이 불가피하게 불균등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면 결국 권력자가 이를 제대로 사용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권력’이라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저자는 “다른 이가 당신을 필요로 하는 한 당신은 권력을 가졌고, 따라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권력자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가, 직장인, 특히 여성·아이 등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권력의 양보다도 그 사용 방법이고 권력은 우리가 남들로부터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 되는지, 그리고 남을 얼마나 잘 보살피는지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권력은 특정 개인의 명예와 파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권력, 집단을 위한 권력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권력의 오남용과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 행사를 연극 배우가 연기(Acting)하는 것에 비유해 설명한다. 배우가 역할을 맞게 연기 하듯이 우리가 사회와 직장에서 주어진 역할에 맞게 권력을 사용하면 별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적절하게 권력이 행사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직의 최고 권력자를 어떤 사람으로 선택(캐스팅)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권력의 수평성’ 이론에 기반하면 권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들도 연대해서 상위 권력자에게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거대한 사회변혁에서 시작해 ‘미투운동’이나 직장내 괴롭힘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의미다.
책을 번역한 출판사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권력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유용한 주장”이라고 전했다. 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