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발표하려 했던 증세 정책인 ‘민주당표 세법개정안’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특위안에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 적용 기준을 각각 200억 원과 3억 원으로 대폭 낮춰 세수를 확보하는 내용이 담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증세안 반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이 원내 지도부 교체를 계기로 해당 증세안을 일단 덮어두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박광온 원내대표 시절 출범한 민주당 조세개혁특위는 활동을 사실상 종료했다. 당초 민주당은 특위가 발표하는 민주당표 세법개정안·예산안을 바탕으로 정책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등이 함께 논의한다는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특위는 지난달 26일 세법개정안을 먼저 발표하려 했으나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로 박광온 원내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좌초됐다.
특위가 추진하려 했던 증세안의 핵심은 법인세 및 소득세의 최고세율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법인세 최고세율(24%)은 기업의 소득 중 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부분에 대해 적용되고 있다. 특위는 이를 조정해 ‘200억 원 초과’ 부분에 대해서도 최고세율을 매기려 했다. 특위는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 범위도 현행 기준인 ‘과표 10억 원 초과’에서 ‘과표 3억 원 초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했다. 특위는 이를 통해 2조~3조 원가량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특위는 이렇게 증세로 마련한 재원을 출산 장려 정책 등에 사용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출산·자녀 세액공제 확대를 추진하려 한 것이다. 출산에 직접적으로 혜택을 부여해 저출산 문제 해소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미 진선미 민주당 의원 등이 자녀 세액공제를 연 15만~30만 원에서 연 20만~40만 원으로 높이는 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논의 과정에서 프랑스식 ‘N분의 N승’ 소득세 제도 도입이 제안되기도 했다. 이는 가족의 합계 소득을 가구원 수로 나눠 1인당 소득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가족 수가 많을수록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특위와 정책위가 검토한 결과 당장 현실화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당내 논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된 것이다. 특위의 증세 방안에 직접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한 의원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위 관계자는 “기재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증세하자는 내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며 “원내 지도부가 바뀐 김에 특위안이 유아무야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위안이 곧 발표될 민주당 예산 심사 방향에 어느 정도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다음 달 2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간사, 정책위가 함께 예산 심사와 관련된 내용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