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무너진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법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필수 의료, 현 의대정원으론 역부족

의사수 대폭 늘리되 분산은 최소화

종합병원등 진료분야 세분 센터 지정

효율 높여 '응급실 뺑뺑이' 막아야





의사가 부족해 필수의료·지역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매일 20명이 넘는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겪고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24시간 소아 응급 환자를 볼 수 있는 곳은 4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지방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는 의사들이 동네 병의원으로, 수도권 병원으로 옮겨가면서 남아 있는 의사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응급 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니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면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응급·중증·소아·분만 같은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가 낮은 것은 맞지만 수가만 올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올리면서 20년 넘게 방치한 기형적인 우리나라 의료 체계를 함께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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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의사 배출을 많이 늘리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 미용성형같이 비급여 진료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에 의사가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동네 병의원에서 경증 환자를 보던 의사가 대학병원에서 당직을 서며 응급 환자와 중환자를 보기는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인구당 의대 정원으로는 당장 필수의료·지역의료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OECD 국가 의사 수와 여러 국책연구기관의 추계를 종합하면 의대 정원을 적어도 3000~4000명은 늘려야 한다.

둘째, 병의원들이 무한 경쟁, 각자도생하는 의료 체계를 ‘상생·협력의 의료 생태계’로 바꿔야 한다. 중증 응급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겪는 것은 역설적으로 응급 환자 수에 비해 응급센터로 지정된 병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사 수에 비해 병원이 너무 많다 보니 의사는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고 병원당 2~3명밖에 안 되는 의사로는 365일 당직을 설 수 없으니 밤에는 대도시마저도 응급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는 무의촌이 된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을 환자 수요에 맞게 응급·심장·뇌·소아와 같은 분야별 센터로 세분해 지정해야 한다. 그러면 센터당 의사 수가 6~7명이 돼 24시간 365일 응급 환자 진료가 가능해지고 환자 수가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가 생겨 의료의 질과 효율성이 모두 올라간다. 예를 들어 심장센터로 지정된 병원에 대해서만 심장병 환자 진료 수가를 획기적으로 올려주면서 심장내과·영상의학과·흉부외과 전문의를 과목별로 6~7명 이상 고용하도록 조건을 달면 된다. 만약 건강보험 수가만 올리면 응급·중증·소아·분만 환자를 보겠다고 나서는 병원이 많아져 의사가 분산되면서 응급실 뺑뺑이는 오히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셋째,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를 통제해야 한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 대란이 심각해진 이유는 실손보험과 맞물려 비급여 진료가 늘면서 동네 병의원 의사의 수입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 월급에 비해 2배 가까이 뛰어서다. 병의원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어 비급여 진료의 수익률은 100%, 의원당 비급여 수입은 연간 1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 수가를 아무리 올려도 동네 병의원의 비급여 진료가 계속 늘어나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동네 병의원으로 의사 유출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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