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단독] 내년에도 '세수펑크' 비상…예정처 "6조 덜 들어올 것"

예정처, 국세수입 361조 예상

정부가 내놓은 전망치 밑돌아

국제정세 불안에 결손 더 커질수도





올해 60조 원에 달하는 세수 펑크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내년에도 6조 원의 세수가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미국발 긴축 장기화 등 대외 악재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로 세금이 덜 걷힐 경우 세수 펑크 규모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0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4년 및 중기 국세수입 전망’에 따르면 예정처는 내년도 국세수입을 361조 4000억 원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 국세수입 전망치(341조 4000억 원)보다는 20조 원 늘어난 규모지만 정부가 내놓은 내년 전망치 367조 4000억 원에 비해 6조 원 적은 수치다.

주요 세목별로는 법인세가 정부 전망치(77조 7000억 원)보다 2조 7000억 원 줄어든 75조 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소득세(124조 8000억 원)와 부가가치세(81조 1000억 원)도 정부 전망치보다 각각 1조 원, 3000억 원씩 덜 걷힐 것으로 예측했다. 예정처는 “교역 조건 악화 등을 반영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정부보다 올해 1.2%포인트, 내년 0.7%포인트 낮게 전망한 것에 근거했다”며 “올해 하반기 일부 업종의 법인 영업 실적 개선에도 상반기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확대로 경기 회복이 또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내년도 세수가 예정처의 전망치보다 덜 걷힐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이키형' 회복 우려에…"2027년까지 31조 덜 걷힐 것" 전망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또다시 세수 펑크 우려가 커지는 데는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의 급속한 악화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예정처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1%로 내다봤다. 이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치인 1.4%를 밑도는 수치다. 예정처의 내년 성장 전망치 2% 역시 한은(2.2%)의 눈높이보다 낮다. 더욱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던 8월 이후 불과 두 달 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발발과 미국발 긴축 장기화 우려 고조 등 잇따른 대외 악재로 정부의 ‘상저하고’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진 점도 세수 결손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예정처가 내놓은 내년 국세수입전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법인세수가 정부 전망치(77조 7000억 원)보다 2조 7000억 원 덜 걷힐 것으로 예측했다는 점이다. 법인세는 3~5월 전년도 실적에 대해 내는 확정신고분과 8월 말 당해 실적에 매겨지는 중간예납분이 있는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확정신고분과 중간예납분 모두 정부 예측치보다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정처는 유가증권상장사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159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8%로 줄어든다고 예측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하반기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는 데다 미국발 긴축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세도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정처는 내년도 소득세(124조 8000억 원) 역시 정부 전망치보다 1조 원 적게 들어올 것으로 예측했다. 종합소득세 세원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경제지표 전망치를 정부보다 낮게 잡은 데다 고금리 장기화로 부동산 거래가 정부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으면서 양도소득세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부가가치세 역시 정부 전망치(81조 4000억 원)를 3000억 원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예정처의 내년도 세수 전망이 결코 보수적인 분석이 아니라고 말한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경우 법인세를 중심으로 세수 부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이 또다시 금리를 올리면 양도소득세수가 크게 줄어들 수 있는 데다 한계기업들이 무너지면서 법인세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정부가 공언해온 ‘상저하고’의 경기 흐름 대신 경기가 급격히 하강해 저점을 찍은 뒤 오랫동안 느리게 상승하는 ‘나이키형’ 회복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는 이유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세수 전망이 좋지 않다는 점에는 충분히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기업 규제 개선 등을 통해 세수 결손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규제 개선 등 경기 부양을 통해 세수 결손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올해 60조 원의 세수 펑크로 가용재원을 다 끌어다 써버린 만큼 내년도 세수 결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경우 국채 이자가 급증하면서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예정처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국세수입이 연평균 6.6%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전 5년간의 국세수입 증가율 7.8%보다 낮은 수치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산 시장 수요 감소로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증권거래세, 종합부동산세수가 모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놓은 국세수입 전망치인 연평균 6.8%보다 0.2%포인트 낮다. 이에 따라 예정처의 2023~2027년 국세수입 전망은 정부 전망보다 30조 7000억 원 낮을 것으로 집계됐다.



일관성·구체성 없는 R&D예산 구조조정…투자성과도 '매몰' 우려


한편 윤석열 정부가 ‘나눠먹기식’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바로잡겠다며 대규모 예산 삭감에 나선 것을 두고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6개월 만에 정부가 말을 바꿔 정책 조율도 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또 기존 투자 성과가 사라지는 ‘매몰 비용’까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도 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2024년 R&D 분야 예산안은 과거의 점진적 증가 추세와 달리 급격히 감소해 연구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R&D 예산을 올해 31조 778억 원에서 내년 25조 9152억 원으로 16.6% 감액했다.

대규모 R&D 예산 조정이 민간 기업의 관련 투자 축소로 이어질 우려도 있는 만큼 적절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예정처의 시각이다. 정부가 9월 국회에 제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R&D 분야의 재정지출은 5년간 연평균 0.4% 증가한다. 예정처는 이를 두고 최근 4년간 연평균 10.8%씩 공격적으로 확대 발표한 계획과 일관성이 떨어질 뿐더러 세부 부문별 재정지출계획도 수립하지 않아 구체성도 결여돼 있다고 혹평했다. 아울러 예정처는 올해 초 발표한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투자전략(2023~2027년)’이 목표와 정합성도 부족하다고 봤다. 실제 3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에서 2027년까지 5년간 17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6개월 만에 145조 7000억 원으로 축소시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재부 간 정책 조율 문제도 드러냈다.

예정처는 과기부가 과학기술기본법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과기부는 법정 기한(6월 30일)보다 두 달 늦은 8월 22일에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를 열고 R&D 예산 배분·조정을 확정해 기재부에 통보했다. 예정처는 “건정 재정 기조하에 예산안 구조 조정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법률에 정해진 기한을 넘겨 제출된 안건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평가·통보했다. 최근 10년간 법정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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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예정처는 매몰 비용을 우려했다. 예정처에 따르면 전년 대비 50% 이상 감액된 R&D 사업이 전체의 39.1%에 달했다. 예정처는 이들 사업이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대부분 폐지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예정처는 “투자 비용뿐 아니라 예산 지원으로 개발되거나 이미 구축된 장비와 연구 인프라까지도 사장될 수 있어 활용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우영탁 기자·세종=송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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