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미국 물가가 목표 수준인 2%에 도달하는 시기를 2026년으로 전망한 것은 그만큼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목표 도달 시기가 2025년 상반기로 미국은 물론 유로 지역(2025년 하반기)보다 빠르지만 이는 물가 정점 수준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최근 근원물가 상승률을 살펴보면 한국은 3.3%로 미국(4.1%)이나 유로 지역(4.5%)보다 상당 폭 낮다.
문제는 물가 목표 도달 시점이 늦춰지면 금리 인하 시기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1970년 이후 주요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가운데 5년 이내 해결된 사례가 60%에 그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에 실패한 대부분의 경우가 ‘성급한 승리 선언’에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물가 수준이 목표 수준에 수렴하더라도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말 것을 주문한 셈이다. 통화 당국 입장에서도 물가가 목표 수준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정책 전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물가 목표 달성 시기가 다른 주요국보다 빠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지만 통화 당국 입장에서는 정책 딜레마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탄탄한 경기를 바탕으로 고물가·고금리 흐름을 이어가는 동안 우리나라 물가가 먼저 목표 수준에 도달할 경우 선제적 금리 인하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진 상태에서 한은이 먼저 금리를 내릴 경우 원·달러 환율 급등이나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을 배제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특히 한은의 6연속 금리 동결에도 장기금리를 중심으로 미국 국채금리를 따라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는 만큼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이날 한은도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 현황 및 평가’ 보고서를 통해 국가별로 디스인플레이션 동인과 경기 흐름이 다르게 나타나면서 팬데믹 이후 물가 상승 국면에서 동조화됐던 통화정책이 점차 차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정책 차별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금융·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등 부정적 파급 효과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미국의 견조한 수요로 긴축 장기화 전망이 확산하면서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한은이 집계해 이번에 발표한 글로벌 IB들의 전망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중동 사태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상전 확대 등 중동 사태가 아직 진행 중인 데다 이날 국제유가는 하락 전환하는 등 향후 흐름을 좀처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은은 “최근 중동 사태로 물가 상방 리스크가 커진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물가 둔화 속도는 당초 예상보다 더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다음 달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지만 인하 시기가 늦춰지며 고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동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지정학적 위험과 관련한 군사 지출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늘면서 인플레이션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국채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가 물가 목표 수준에 먼저 도달하더라도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긴축 여건은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가계나 기업의 부채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장 기업 고금리 부채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과거 저금리 기조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을 가정하고 보수적인 시나리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시스템적인 위기는 대체로 드러나지 않은 위험에서 촉발했다”며 “재무상태표상 부채로 집계되지 않는 우발채무와 관련해 규모와 확정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응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