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30여 년 전만 해도 100가구가 넘는 제법 큰 농촌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 집에 못 잡아도 6~7명의 식솔들이 있었으니 마을 인구가 500명은 족히 넘었으리라. 하지만 이따금 내려가보는 시골은 이제 30가구 남짓만 남아 힘겹게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것도 여든을 훌쩍 넘긴 홀몸 노인 아니면 노부부만 사는 집이 대부분이다. 논밭은 이미 외국인 근로자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연로한 아버님은 말씀하신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우리 마을은 사라질 것이다.”
김포시가 서울의 26번째구 편입을 추진한다고 난리다. 인구가 48만 명에 달하고 면적만 해도 서울의 절반 수준(207㎢)의 도시가 갑자기 행정구역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1963년 지금의 양천구와 강서구를 서울에 떼준 김포는 이제 통째로 서울과 한 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구리시와 하남시(감일·위례) 등 서울을 둘러싼 위성도시들은 너도나도 ‘서울 가즈아’를 외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유일한 ‘특별시민’이 되면 교통이 좋아지고 집값이 오르며 아이들 학교 문제도 개선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불과 5개월여 앞두고 수도권 표가 필요한 여당은 전광석화처럼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수도권 지자체들의 ‘메가 서울’ 입성을 사실상 종용하고 있다. 실제로 편입이 될지 안 될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년 4월까지 기대감으로 여당에 한 표를 찍으면 그만이라는 심산이다.
김포가 서울로 이삿짐을 싸겠다고 하니 경기도와 인천시는 노발대발이다. 해당 단체장들은 여야를 넘어 ‘국토 갈라치기’ ‘총선용’ ‘정치쇼’ 등 거친 단어들을 동원하며 연일 김포시와 여당에 십자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인 2500만 명(서울 940만 명, 경기도 1300만 명, 인천 300만 명)이 살아가는 거대 지자체들 간의 알력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아이러니한 것은 1일 여당의 ‘메가 서울’ 특별위원회와 대통령이 참석한 ‘지방시대’ 선포식이 한 날에 진행됐다는 것이다. 서울도 키우고 지방도 잘살게 하겠다는 것인가. 현재 지방에 ‘시대’라는 단어는 너무 사치스럽고 비현실적이다. 그저 ‘지방 생존’이 적확한 표현이다. 메가 서울과 지방시대. 너무도 생경하고 우스꽝스러운, 그야말로 정책의 불편한 동거다.
어찌됐든 ‘메가 서울’의 신호탄은 올랐고 싫든 좋든 당분간 뜨거운 감자가 될 성싶다. 여당은 지방이 사라지고 마을이 소멸되는 끔찍한 현실에는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지만 선거에서 표가 되지 않아서인지 안중에도 없다.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권의 표심이 관심일 뿐이다. 그리고 유권자들에게 ‘서울특별시민증’이라는 기상천외하면서도 달콤한 사탕을 던졌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마저 깨질 위기에 처했다. 소멸 위험 시군구는 2016년 84곳에서 올해는 118곳으로 급격히 늘었다. 두려운 것은 두 가지가 어쩌면 정해진 미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특별한 곳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인구 소멸, 지방소멸이 보이지 않는다. 출퇴근 때마다 지옥철을 경험해야 하는데 인구 소멸이 웬 말인가.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이 수십만, 수백만 명의 인구를 더 껴안게 생겼는데 지방소멸이 무슨 상관인가.
서울의 행정구역을 넓히는 것과 출산율을 높이고 지방을 되살리는 것 가운데 어떤 게 시급한 일인가. 5개월 뒤 새로 선택 받을 국민의 대변자들은 과연 어떤 과업에 더 충실해야 하는 걸까.
최근 일본의 저명한 인구 전문가 야마다 마사히로 주오대 교수는 국내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한국은 일본보다 저출산·고령화가 훨씬 빠르다”며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인구구조가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나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지적했다.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출산율과 지역 생존을 위해 허무맹랑할 정도로 깜짝 놀랄 어젠다를 던지는 곳에 나의 한 표를 줄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