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부채가 201조 4000억 원(상반기·연결 기준)까지 불어난 이유는 명료하다. 연료비 가격 상승으로 발전사로부터 비싸게 전력을 사들였는데 그만큼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손해를 감수하며 전력을 팔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전의 전력 구입 금액은 88조 6700억 원, 전력 판매수입은 66조 300억 원이었다. 전력 판매에서 23조 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기형적 재무구조를 고치기 위한 정공법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하지만 민생 부담을 이유로 한전이 원하는 만큼의 전기료 인상은 번번이 실패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정이 논의 중인 4분기 전기요금 역시 주택용과 일반용은 동결, 산업용만 오를 가능성이 나오는 상태다. 경제 활력 저하, 고물가가 고착화하는 터라 전기요금 인상(전력 판매 수입 증대)을 통한 재무 개선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한전은 전력 구입 금액을 낮추기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2024~2028년 중장기 경영 목표’에 따르면 한전은 내년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차액계약제도 연구용역을 마무리한 뒤 제도 도입을 위한 규정을 정비할 계획이다. 올 초 시작된 연구용역은 현재 마무리 단계다. 한전은 이미 LNG 민간 발전사들을 대상으로 제도 설명회 등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은 2025년 시범 사업, 2026년 정식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전이 추진 중인 차액계약제도는 발전 사업자와 전력 구매자(한전)가 사전에 계약한 가격으로 장기간 전력을 구매하는 제도다. 현재의 현물시장 중심 거래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간 일정한 기준가격으로 전력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시장가격이 계약가격보다 높을 때는 추후에 한전이 발전 사업자에 그 차액을 지급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발전 사업자가 한전에 그 차액을 준다.
일각에서는 궁극적으로 ‘정부승인차액계약제도(VC)’를 도입하기 위한 발판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차액계약제도는 기준가격, 계약기간 등을 한전과 발전사가 협의해 정할 수 있는데, VC의 경우 그 조건을 정부가 정해 한층 강제성이 강하다. 업계에서도 VC와 비슷한 방식의 제도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전은 전력도매가격(SMP)의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LNG 가격의 경우 국제 수급 동향, 환율 변동에 노출돼 경영계획 수립 등에 어려움이 크다. 또 미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전력 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한전이 창사 이래 최악의 경영난에 빠진 상황인 만큼 전력 구매에서 손실을 최소화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가령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연료비가 계속 올라도 시장가격보다 낮은 기준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할 수 있어 한전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한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시장가격이 계약가격보다 높을 때는 한전이 발전사들에 그 차액을 지급해야 하기도 하지만 시장가격이 높으면 발전량 자체가 줄어 보전해줘야 하는 차액도 적을 것”이라며 “현재 전망 등을 고려하면 그 반대의 상황이 될 경우가 더 많아 한전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도 설계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수조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맞다”라면서도 “발전사의 협의가 있어야만 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한전에게 유리하게 설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관건은 발전 업계의 호응이다. SMP가 높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라 발전 업계가 개편될 제도에 동참할 유인이 작기 때문이다. 발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준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한전과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전은 해외 자산 매각 계획도 이전보다 구체화했다. 올해 난항을 겪었던 필리핀 발전소 매각을 내년에도 지속 추진한다. 아울러 2026년부터는 중국 산시와 베트남 응이손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2028년부터는 인도네시아 자바 9&10 석탄화력의 지분과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 지분 매각 착수에 나설 계획이다. 한전은 “모든 해외 석탄발전소를 매각한다는 원칙하에 해외 사업을 재편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