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흔들리는 전기차 시장…'피크아웃' 우려에 중고차 값도 뚝

[10월 중고 전기차 2.5% 하락]

구매비용 부담·충전인프라 부족에

가솔린·디젤 모델보다 더 떨어져

볼보 등 일부 수입차는 8% 넘게↓

높은 감가상각에 신차 구매 꺼리는

'역 카니발리제이션' 현상 우려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던 전기차 시장이 둔화하면서 중고차 시세도 크게 하락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중고차 가격 하락을 우려해 전기차 신차 구매까지 꺼리게 되는 일명 ‘역(逆) 카니발리제이션(신제품이 기존 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인증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며 가격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중고 전기차의 시세 하락 폭이 커지고 있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기업인 케이카 통계를 보면 올해 7월 보합(-0.2%) 수준이던 중고 전기차 평균 하락률은 매월 하락 폭을 키우다 10월에는 -2.5%에 달했다. 매월 1% 안팎의 감가가 이뤄지는 중고차 특성을 감안한다면 중고 전기차의 하락률이 더 높은 셈이다. 반면 지난달 가솔린과 디젤 중고차의 하락률은 각각 -0.6%, -0.4%를 기록하며 전기차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전기차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카가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유통되는 출시 12년 이내 740여 개 모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고 전기차의 평균 시세는 이달에도 2%가량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볼보의 C40 리차지(-8.4%)와 르노 조에(-8.1%) 등 수입 브랜드 중 일부 모델은 한 달 새 8% 넘게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산 브랜드인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6와 기아의 쏘울 EV는 각각 4.9%, 4.5%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중고 전기차는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등 높은 몸값을 자랑했다. 그러나 고금리로 불어난 구매 비용 부담, 부족한 충전 인프라로 전기차 수요 자체가 줄면서 중고차 시장의 분위기도 반전됐다. 제조사들의 가격 인하와 정부 보조금 확대 등으로 중고차 시세 산정의 기준점인 신차 실구매가가 내려가면서 중고차 시세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고 전기차에 대한 객관적 성능 평가, 가격 산정을 거치지 않은 거래가 빈번하다는 점도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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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중고차 가치 하락이 신차 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신차를 구매할 때 중고차 가격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로 매각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기대 수준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면 신차 구매를 미루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본인이 타던 차량을 중고로 처분한 뒤 신차로 갈아타는 패턴을 보인다”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등에 비해 감가상각이 크다는 점에서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인증 중고차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기아는 국내 완성차 업계 가운데 처음으로 인증 중고차 대상에 전기차까지 포함하며 차별점을 뒀다. 자사의 중고 전기차에 대한 직접적인 품질관리와 투명한 정보 공개로 가격을 방어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당장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중고 전기차 물량을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기아는 중고차 매입 대상을 자사의 신차를 구입하는 고객의 기존 차량으로 한정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 지급에 따른 의무 보유 기간(2년)도 지켜야 한다. 실제로 이날 오후 4시 기준 기아 인증 중고차 홈페이지에 올라온 매물(예약 중 차량 제외) 167대 가운데 전기차는 3.6%인 6대에 그쳤다.

중고차 판매 채널에 대한 고객 접근성 및 편의성에 대한 고민도 요구된다. 기아의 인증 중고차 구입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만 가능하다. 온라인 홈페이지에 더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까지 갖추며 고객 접점을 늘린 현대차와는 대조적이다.

모바일로 기아의 중고차 홈페이지에 접속해 매물을 살펴볼 수 있지만 불편함은 고객의 몫이다. 검색한 매물의 재원과 연비 등 정보를 확인하는 ‘자세히 보기’를 누른 후에 뒤로 가기를 하면 해당 매물이 아닌 검색 화면으로 돌아가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해당 매물의 가격과 주요 옵션, 판매자 정보를 추가로 확인하려면 다시 매물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기아 관계자는 “기아 인증 중고차는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e커머스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며 “추후 다양한 서비스를 갖춘 모바일 앱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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