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아라크네의 우화가 실려 있다. 리디아 출신의 아라크네는 직물을 짜는 솜씨가 탁월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는 아름다운 직물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솜씨가 직물을 관장하는 아테나 여신보다 뛰어나다며 실력을 뽐냈다. 이러한 아라크네의 자만심에 화가 난 아테나는 노파로 변신해 신을 모독한 아라크네를 꾸짖었으나 그는 오히려 아테나에게 경연을 신청하는 당돌함을 보였다. 결국 아라크네와 아테나 간 직물 경연이 이뤄졌고 신을 조롱하는 대담한 장면을 표현한 아라크네는 신의 노여움을 사 거미로 전락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 우화는 거미의 습성을 신화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서구 미술계는 거미로 변신한 아라크네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미학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에 주목했다. 플라톤은 인간의 정신과 이성 안에 완벽한 미의 원형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의 동시대인들은 미가 인간 정신의 산물이며 상징과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거미가 만들어낸 형상은 아무리 정교해도 예술이 될 수 없고 오직 이성적 사고 능력을 지닌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는 서구 고전 시대의 미 개념이 이 우화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라크네의 우화가 여러 시대에 걸쳐 서구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크미술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도 1640년대 이 주제를 그림으로 제작했다. 현재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실 잣는 여인들’은 아라크네 우화를 바로크적 화풍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신화 속 장면과 일상적 현실을 중첩해 보여줌으로써 주제의 극적인 효과를 강화하고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생동감 있는 화면을 구현하고 있는 점이 이 그림의 특징이다. 또한 작품 속 젊은 아라크네의 모습은 벨라스케스의 또 다른 자아로 해석되는데 어쩌면 아라크네는 모든 예술가들의 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