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바쁠 때 더 일하고 한가할 때 쉴 수 있게 유연화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3일 제조·건설업, 설치·정비·생산직 부문 등부터 실태 조사와 노사정 대화를 거쳐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겠다고 밝혔다. 최대 근로시간도 당초 거론했던 ‘주 69시간’보다 완화해 60시간 이내에서 한도가 정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3월에 노동계의 반발로 물러섰다가 8개월 만에 ‘전체 유연화’에서 ‘일부 업종·직종 유연화’로 한발 후퇴해 ‘반쪽 개편’에 그친 셈이다. 내년 4월 총선 전까지는 근로시간 개편이 확정되기가 사실상 어려워 개혁 의지가 뒷걸음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우리나라의 올해 잠재성장률이 1.9%로 1%대로 추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도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조사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효율성 순위는 63개국 중 42위에 머물러 멕시코·칠레보다도 뒤졌다. 노동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규제·연금·교육 개혁 등이 절실하지만 그중에서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노동시장의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게 급선무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개혁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워 산업 현장의 법치 확립,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이어 근로시간 유연화도 산업 현장에서 조속히 뿌리내릴 수 있게 노동 개혁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근로시간뿐 아니라 취약 계층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보강을 전제로 채용 및 해고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연공서열 위주에서 벗어나 직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한 임금 체계 개편도 서둘러야 한다.
일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노동 개혁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로 인해 노동계의 반발이 크므로 개혁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 정부가 불굴의 뚝심으로 더 정교하게 준비해 노동계와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일관되게 추진해야 노동시장 유연화를 비롯한 노동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 이 상태로 가면 2% 밑으로 떨어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수년 내에 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 개혁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