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과 연료전지, 수소 생산, ESS(에너지저장시스템)까지 이종 에너지 저장과 생산 시스템이 다 결합돼 있는 곳은 국내에서 이 곳 창원그린에너지센터가 유일합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재생에너지 전기들은 해외 수출을 위해 RE100을 달성해야 하는 산업단지 인근 기업들에게 공급되지요. 자력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이 어려운 중소·중견 수출 기업들에게 해외 시장을 돌파할 수 있는 열쇠가 되고자 합니다."
축구장 하나 남짓한 크기의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에 들어서자 태양광 설비를 비롯해 전기를 저장하는 ESS, 수소연료전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뽑아내는 수전해기 등 생소한 기기들이 빼곡했다. 통합관제센터의 대형 모니터에는 신재생에너지 수요와 공급 현황을 나타내는 숫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태양광 발전을 통해서만 연간 2620MW/h 가량의 재생에너지가 생산되고 있다. 4인 가족 약 7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규모다.
창원시 북면 동전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는 국내 최초로 에너지 자급자족형 인프라 구축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2021년 총 사업비 393억 원을 투입해 이 곳을 건설했다.
여기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들은 창원국가산단 내 위치한 수출 기업들에게 '1대 N' 방식의 직접전력거래계약(PPA)으로 공급된다. 총 4곳으로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해야 하는 수출 기업들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인 RE100은 수출 기업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애플·BMW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핵심 부품 납품업체에 RE100 동참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날 현장에는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공급받는 오정석 현대정밀 대표도 참석했다. 조향장치, 리코일 스프링 등 부품 수출 업체인 현대정밀은 글로벌 기업인 볼보건설기계의 1차 협력사로 재생에너지 사용이 필수인 상황이다. 오 대표는 "자체 발전을 3년 전부터 검토했지만 투자 대비 효용이 적어 어려웠다"며 "SK에코플랜트의 RE100 지원을 통해 현재 전체 소비량의 30%를 태양광 발전 에너지로 대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SK에코플랜트는 이처럼 자체적으로 RE100 이행을 준비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형편에 맞도록 다수 전기사용자들에게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일반적으로 재생에너지 전기 가격은 일반 산업용 전기보다 1.5배 가량 높지만 이 곳에서는 비슷한 수준이다. 이같은 공급이 가능한 것은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에 구축된 1.8MW(메가와트) 규모 연료전지 덕분이다. 마치 냉장고같이 네모 반듯하게 생긴 연료전지들은 24시간 생산·저장하는 전기를 전력시장에 공급한다.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를 운영하는 SK에코플랜트 자회사 창원에스지에너지 이철욱 대표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기의 양 자체가 적다 보니 가격이 너무 높아 기업들의 부담이 컸다"며 "이곳에서는 유휴부지를 활용해 분산에너지인 연료전지를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 판매 수익을 활용해 기업들에게 태양광 재생에너지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 한 켠에는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뽑아내는 고체산화물 수전해기(SOEC)도 구축돼 있다. 아직은 실증 단계지만 향후 재생에너지 전기로 만드는 그린수소를 주입할 경우 연료전지에서 생산되는 전기도 RE100 이행 수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종 에너지 저장과 생산 시스템이 결합된 복합에너지인프라가 갖춰진 것은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가 국내 최초다. SK에코플랜트는 이 곳을 기점으로 전력 서비스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하고 국내외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활성화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플랫폼 기반으로 연결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가상발전소(VPP) 기반 전력중개사업도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를 중심으로 추진 중이다.
뒤이어 향한 곳은 해상풍력 밸류체인의 중심인 자회사 SK오션플랜트. 지난 2021년 11월 SK에코플랜트에 편입된 SK오션플랜트는 아시아 1위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기업이다.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바다 너머 주황색 초대형 크레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해양 플랜트와 조선 등을 수행하던 야드는 이제 글로벌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지탱하는 튼튼한 하부구조물 제조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SK오션플랜트의 주력 생산제품은 '재킷'이다. 해상풍력 발전기를 3~4개의 지지대로 고정해 수심이 깊은 곳에 안정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현장에서는 커다란 대형 철판을 동그랗게 구부리는 'JCO 공정'이 한창이었다. 두께가 최대 150mm에 이르는 평평한 철판을 알파벳 J처럼 구부리기 시작해 동그랗게 만든 후 끝과 끝을 이어붙이면 재킷의 일부분이 된다.
전명우 SK오션플랜트 풍력생산본부장은 "용접 과정에서 미세한 공극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 기술"이라며 "재킷은 바닷물 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부식이 최소화돼야 하는 만큼 초음파, 마그네틱 등 촘촘한 품질 검사 과정을 거쳐 통과한 강관만 재킷 제조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1야드에서 차로 15분 남짓 떨어진 2야드에서는 1야드에서 생산한 강관을 조립, 용접해 재킷으로 총조하고 배에 실어 수출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 본부장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해상풍력 재캣은 100% 수출됐다"며 "물량 포화 해소를 위해 현재 157만 제곱미터 규모에 달하는 3야드를 건설 중"이라고 설명했다. 2026년 본격 생산을 앞둔 3야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부유식 자켓을 만드는 유일한 공장이 될 예정이다.
SK에코플랜트는 이처럼 자회사들이 보유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RE100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소 자산을 활용해 규모의 경제를 조성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재생에너지 활용 유인을 극대화하겠다는 목표다. 태양광, 풍력 뿐만 아니라 소수력, 바이오매스 등 다양한 고객들의 상황과 여건에 맞춘 재생에너지원을 제공하고 계약기간에 따라 매칭하는 솔루션도 준비 중이다. 오승환 SK에코플랜트 분산에너지 담당 임원은 "향후 그린수소를 비롯해 SK에코플랜트가 초기 사업개발부터 기자재 제조, EPC까지 아우르는 자기완결적 밸류체인과 연계도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