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기술이 국가 운명 좌우…산업 융합으로 新제조업 강국 도약해야”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서울대 특임교수)

정부·여야 정치권의 위기의식 부재가 진짜 위기 초래

‘퍼스트무버’ 되려면 국가과학기술 육성전략 서둘러야

빅데이터·AI 활용 디지털 대전환으로 신성장동력 점화

여야, 美처럼 초당적 경제 살리기 입법으로 힘 보태야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이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이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다양한 산업간의 융합 등 구조적 혁신이 절실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권욱 기자




우리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연구 기관마다 올해와 내년의 한국 경제성장률을 앞다퉈 내리면서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 밑으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신성장 동력을 점화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다.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를 맡고 있는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은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위기의식 부재가 진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다양한 산업 간의 융합을 서둘러 신(新)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 전 청장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을 앞세운 디지털 전환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며 “우리도 미국처럼 여야가 초당적으로 합심해 경제 살리기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수출의 침체로 저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성장 잠재력마저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건비 등 전반적 비용 상승, 대립적인 노사 관계, 기업가 정신 퇴조 등의 악영향이 크다. 생산성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비용 부담은 크게 늘었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비용 부담과 규제 더미에 짓눌려 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투자를 가로막는 겹규제에 둘러싸여 제조업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구조다. 수출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부터 되살려야 한다.

-제조업도 비용 부담이 큰 문제인데.

△현재의 무역 적자는 우리나라 제조업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저비용 고효율 국가에서 고비용 저효율 국가로 급속히 바뀌면서 성공의 핵심 요소를 대부분 잃어버렸다. 임금·근로시간 등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이므로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혁신이 중요하다. 경제 위기의 돌파구는 글로벌 경쟁력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들은 첨단 기술 개발과 시장 다변화, 해외 마케팅 강화 등을 빠른 속도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인가.

△사회 전반의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이 진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든 국회든 반도체 세계 1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찬사에 도취해 경제가 저절로 굴러간다고 믿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주 52시간 도입 등으로 인건비 부담을 높여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당시 반도체를 빼고 나면 일반 품목에서는 이미 무역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이른바 반도체 착시 현상이다. 이러다가는 서서히 물이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 정부도 국민들에게 심상치 않은 경제 상황을 털어놓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정부가 수출 확대를 위해 나름 뛰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1호 영업 사원’을 강조한 것은 수출 걸림돌 해소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부 부처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 생산성과 혁신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민관 협력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수출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다. 노동생산성 제고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8위로 아일랜드의 3분의 1, 미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생산성 제고를 위해 법을 바꿔야 하지만 현재의 정치 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얘기다. 정부 입장에서도 실질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도 위기의식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한다.

-결국 정치가 문제라는 얘기인가.

△우리는 법을 만들려고 해도 여야 간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려 쉽지 않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행정력만으로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여야가 합심해 법까지 만들어가면서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법을 만들지도 바꾸지도 못하고 있다.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싶어도 법부터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답답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왔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액션이 필요한 때다. 여야 정치권은 책임 공방에 앞서 경제 살리기 입법에 초당적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주요국마다 반도체 등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데.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 주요국들은 정부가 앞장서 경제를 살리겠다며 기업과 한 몸으로 뛰고 있다. 첨단 기술과 전략산업이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우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삼성·TSMC 측과 접촉해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지원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도 “이대로 가면 죽는다”면서 파격적인 산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그런 절박감이 약하다 보니 혁신 추동력이 떨어지고 경쟁력에서도 한참 밀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범국가 차원의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다. 국론이 분열되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고 공멸할 뿐이다.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는 ‘제로 성장 시대’에 진입할 우려가 크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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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돌파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퍼스트무버(선도국)가 되려면 우리만의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야 한다. 국가 과학기술 육성 전략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기술 혁신을 통해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글로벌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도와주는 지원책도 절실하다. 세상에 없는 신기술을 만들어 기술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

-산업계 전반의 디지털 대전환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는데.

△디지털 대전환은 기업과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을 되찾는 데 매우 효과적인 해법이다. 디지털 대전환은 연결과 빅데이터·AI가 핵심이다. 생산 현장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이루는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사업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신산업과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의 활로는 무엇인가.

△세계 각국은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조업 재무장과 신제조업 전쟁을 벌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존의 제조업과 서비스·정보통신·에너지·콘텐츠 등 연관 산업을 융합하는 신제조업을 키워야 한다. 개인 고객별로 맞춤형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산업의 틀을 바꾸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앞으로 신제조업의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범국가 차원의 신제조업 육성 전략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각국마다 스타트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은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스타트업 육성 5개년계획’을 마련해 2027년까지 스타트업 10만 개를 만들어낼 방침이다. 미국은 일찍이 스타트업 혁신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바꿨다. 스타트업이 꾸준히 성장하거나 기존 기업에 인수됨으로써 성장의 물꼬를 텄다. 정부는 과감한 지원을 통해 스타트업을 키워 대한민국의 혁신 생태계 활력을 북돋워야 한다. 그러자면 스타트업의 육성을 막는 규제를 해소하고 기득권의 횡포부터 차단해야 한다. 오죽하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의 절반가량은 한국에서라면 태동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겠는가.

-생산성 향상이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블루칼라 분야의 경우 로봇화를 통해 인력 투입을 줄이거나 해외 공장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긴밀한 협력 확대가 불가피하다. 특히 생산성 향상의 결정적 요소는 적절한 AI 활용이다. 생성용 AI를 잘 쓰면 하루에 걸릴 업무를 10분 만에 처리할 수 있다. 결국 디지털 대전환이 생산성 향상의 결정적 동력이 될 수 있다.

―민간과 정부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떻게 보는가.

△윤석열 정부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시장경제’를 얘기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민간이 과연 홀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은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같이 끌고 간다. 요즘 같은 대전환기에는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뒤에서 미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밀고 끌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과감한 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사슬 제거 등으로 초격차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을 전폭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원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산업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GE써모메트릭스 아태 담당 사장과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에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주력산업총괄 매니징디렉터(MD) 등을 역임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거쳐 중소기업청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와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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