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속 하루] 수에즈 운하 개통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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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과 물길을 잇는 운하의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많다. 4대강사업을 거치며 적지 않은 사람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것은 물길을 내기에 지형이 불리하고 대체 운송 수단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해될 뿐이다. 물길과 물길을 이어 물류 운송의 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성공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 하나가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다. 이 물길을 통해 결국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고 필요한 물자를 훨씬 빠르게 수송하는 시간의 마법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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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들은 일찍이 기원전 이 마법에 동참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적군에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신탁 때문에 네코2세가 완공 직전의 토목 사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꿈은 이어졌다. 거대한 인공의 물길을 내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에 운하는 언제나 국책 사업의 대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피라미드 건립에 비견될 수에즈운하 공사는 1859년부터 시작돼 1869년 11월 17일에 개통했다. 본래 민간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사업은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진행했다. 10년의 공사 끝에 북쪽의 포트사이드와 남쪽의 수에즈 인근을 잇는 길이 164㎞, 깊이 8m의 대수로가 완공됐다. 몇 번의 수선을 거쳐 현재는 길이 193㎞, 깊이 24m로 확장됐다. 폭도 205m로 넓어져 이제는 연간 2만 척의 선박이 운항하며 전 세계 물동량의 12%를 담당하고 있다.

수에즈운하는 뛰어난 경제적·군사적 가치 때문에 종종 정치 외교적 갈등을 초래했다. 본래 프랑스와 영국 자본이 소유했던 운하는 1956년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의 국유화 선언을 통해 이집트에 귀속됐다. 이로 인해 국제적 위기가 발생했지만 평시와 전시 구분 없이 모든 선박이 운하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콘스탄티노플 협약을 통해 해결됐다. 그 후에도 수에즈운하는 선박 좌초로 운행 중단을 겪은 것 외에는 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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