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과학기술 개발 총책임자였던 버니바 부시에게 4개의 질문을 편지로 보냈다. 그중 세번째 질문이 ‘공공과 민간 부문의 연구 협업을 잘하게 하는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이고 네 번째 질문은 ‘평화의 시대에도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빠르게 계속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무엇이고, 어떤 프로그램이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였다. 부시는 여러 과학자로 구성된 위원회와 함께 ‘과학, 끊임없는 프런티어(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전략 보고서를 완성해 대통령에게 답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초석이 됐다.
위의 질문은 지금의 대한민국에 여전히 유효하다. 연구개발(R&D) 예산 조정 및 감액으로 시작된 여러 사회적 논의들 속에서 우리 과학기술계가 제시해야 하는 답변이기도 하다. 기술 패권 경쟁이 심해지고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빠르게 삶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적 영역에서 깊게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여러 차원의 해답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요청에 대한 답은 ‘국가 R&D 사업의 최대 성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개발된 기술은 언젠가 다른 기술로 대체될 수 있지만 최고의 기술을 개발한 인재는 또다시 그런 일을 이뤄낸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기술 인재 양성 정책은 세심하게 수립해야 된다. 젊은 과학자 및 기업의 중견 과학기술인, 여성 과학기술인을 포함한 전 주기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생태계의 지경(frontier)을 세계로 반드시 확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전략이고, 국제사회 기대에 부응해 기여하기 위한 방법이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글로벌 생태계를 우리가 주도하기 위한 포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R&D 정책은 국내 중심으로 수립돼 국제 협력은 인력 교류 차원에 머물렀고 전략성이 부족했다. 정부 R&D 예산 중 국제 협력 예산은 2%가 채 되지 않고 과학기술 혁신 지표는 상승했으나 세부 지표 중 국제 협력은 하위권이다. 국제 협력을 위한 법령이 미비해 그간 해외 연구기관이 연구개발 기관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추진된 사업들의 성과 관리도 미흡했다. 해외 우수 기관이 첨단 기술 개발, 표준 논의,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나라와 협력을 하고자 해도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고 공동 펀딩도 어렵다. 예를 들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AI·양자·반도체·배터리·바이오·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합의한 것은 중요한 성과임에도 말이다.
정부가 글로벌 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밝힌 것에 기대가 크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제일 필요한 승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재 생태계와 글로벌 생태계의 활발한 접점을 만들어 세계 최고 과학기술 역량을 가진 해외 연구기관과 지속 가능한 협력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최초·최고에 도전하는 글로벌 R&D 예산은 계속적으로 대폭 확대해야 된다. 과학기술은 지식의 지경을 넓히는 것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경을 넓힐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0.64%밖에 되지 않는 우리가 전 세계를 향해 꿈을 꿀 때 우리의 지경은 끝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역할이고 현재 버전의 우리나라를 위한 ‘끊임없는 프런티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