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의장을 동일인(대기업집단 총수)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통상 마찰 이슈 때문에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한 겁니다(6월 29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2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연내에 내·외국인을 모두 아우르는 ‘동일인 지정 기준’이 명시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행정 예고한다. 내·외국인 간 차별 없는 규제 적용을 통해 통상 문제로 비화할 소지를 없애고 법적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의 범위와 대기업 규제 적용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점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들을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어 관리·감시한다.
문제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동일인의 정의를 명시한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6월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를 도입한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동일인을 판단하는 5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바로 ①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의 최다출자자 ②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③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을 행사하는 자 ④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⑤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동일인 지정 관련 형평성 논란을 말끔히 해소하지는 못했었다. 같은 미국 국적임에도 OCI의 이우현 부회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된 반면 쿠팡의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 위원장도 “쿠팡의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 볼 만한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다”면서도 “통상 이슈 때문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했던 만큼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공정위는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만들기로 가닥을 잡았다. 주요 매출 발생 지역과 국내 거주 여부, 인사권 및 경영상 중요 의사결정 관여 정도 등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충족하는 경우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 법인으로 하는 방식이다. 국내에 본인 또는 혈족이 지분을 보유한 다른 회사가 없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사익 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내·외국인 차별에 따른 통상 문제 발생을 방지하고, 동일인 지정과 관련된 수범자들의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같이 시행령이 개정되면 기존 대기업 총수가 동일인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작 논의의 시발점이 된 쿠팡의 김 의장에게 면죄부만 주게 되는 꼴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