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매각을 추진 중인 HMM(011200)의 새 주인이 이르면 다음 주 결정된다. 최근 주가 상승으로 HMM의 몸값이 커지면서 유찰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가운데 동원과 하림그룹 같은 주요 인수 후보자들도 승자의 저주를 의식해 ‘통 큰 베팅’에 나서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산은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MM 매각 본입찰에 동원과 하림그룹만 참여했다. HMM 인수를 위한 태스크포스(TF) 핵심 직원을 해외로 발령 내면서 사실상 손을 뗐던 LX는 자금 부담에 인수를 포기했다. 산은은 후보자들의 인수 희망 가격과 정성 평가를 더해 이르면 다음 주 우선협상 대상자를 정할 예정이다. 산은은 “본입찰 결과 유효 경쟁이 성립했으며 우선협상자 선정은 통상 1~2주가 소요되나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 최대한 빠르게 선정할 계획”이라며 “연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동원과 하림이 6조 원 안팎의 가격을 써낸 것으로 추산했다. 관건은 매각 최저 가격 역할을 하는 예정 가격이다. HMM의 매각 대상 지분(약 57.8%)은 시가로 약 6조 5000억 원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7조 원을 훌쩍 넘는다.
다만 예정가는 기업가치와 여러 항목을 함께 따지기 때문에 시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인수합병(M&A)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인수 예가는 최근 시가총액과 기업가치, 과거 주가 동향을 같이 본다”면서 “해운업같이 업황 변동이 큰 곳은 주가도 장기간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인수 이후 1년에 배당할 수 있는 금액을 5000억 원으로 제한하는 엄격한 조건을 제시한 만큼 예가를 너무 높게 하기보다는 6조 원 안팎으로 정한 뒤 정성 평가 등을 통해 우선협상자를 가려낼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인수가 6조 원만 해도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산은과 해진공은 내년 5월부터 순차적으로 보유 중인 영구채 1조 6800억 원어치를 주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 경우 새 HMM 주인의 지분율은 38.9%로 떨어진다. 배당 한도액인 5000억 원을 받더라도 1945억 원 정도만 챙길 수 있다.
반면 현재 인수금융(대출) 금리는 연 8% 수준이다. 2조 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하면 이자 부담이 연 1600억 원, 3조 원이면 2400억 원에 달한다. 일반적인 M&A에서 인수금융 비중은 절반가량이다. HMM 몸값이 6조 원이라면 대출을 3조 원은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배당 조건상 2조~3조 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하면 배당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배당으로 원리금을 갚아나간다는 계획이 처음부터 틀어진 꼴이다.
해운 업황이 나빠지고 있고 내년에 HMM 적자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인수 후보자에게 큰 부담이라는 분석이 많다. 해상운송 운임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운임지수(SCFI)는 이달 17일 현재 999.92로 전주 대비 30.32포인트 빠지면서 4주 만에 다시 1000선 아래로 내려왔다. SCFI는 지난해 초만 해도 5000을 넘었다. 1년여 만에 5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본입찰에 참여한 동원과 하림도 이 때문에 막판까지 가격과 입찰 참여 여부 등을 저울질했다. 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산은과 해진공이 남은 영구채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면 새 인수자와의 지분 격차가 미미해진다” 면서 “해운 업황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추가로 지분을 더 사들여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6조 원 이상을 써내서 HMM을 사게 되더라도 자금이 더 들어가야 하며, 이는 결국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유찰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예상했다.
산은은 유찰 시 시기를 정하지 않았지만 재입찰에 나설 계획이다. 산은 계획과 달리 연내 HMM 매각은 물 건너가지만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열린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유찰이 되면 재입찰을 하겠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또 고민을 해봐야 할 부분”이라며 “이와 관련해 결정된 사안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