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의 삶은 언뜻 화려하고 낭만적으로 들린다. 여행 중 한적하고 이국적인 카페에 잠시 머무르며 글을 쓰는 삶. 중장년 중에서도 인생 2막 직업으로 여행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평범한 여행으로는 여행작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김남금(54·사진) 작가는 2021년 영어 강사에서 여행작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20일 서울 종로에서 김 작가를 만나 여행작가가 되는 법과 인사이트 있는 여행의 비법을 물었다.
첫 여행부터 ‘프랑스 노숙’
해외여행 연령제한이 풀린 이듬해인 1990년, 22살이던 김 작가는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여행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한국관광공사의 소양교육도 수료해야 했다. 지금과는 달리 정보를 얻을 창구도 많지 않았다. 그는 여행 책자를 구해 나름의 계획을 세웠지만 책 속의 내용은 업데이트가 안 돼 막상 도착한 여행지에서 고생했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여권과 현금 전부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몸으로 부딪히는 여행이 시작됐다. 숙소에 들어가야 하는 저녁 시간, 김 작가는 숙소 대신 기차역 플랫폼에 섰다. 그날의 저녁 기차 시간표를 훑어보며 ‘오늘 밤 지낼 수 있는’ 야간 열차표를 끊었다. ‘어디가 깨끗해서 노숙하기 좋다더라’는 정보를 얻으면 그 곳에서 밤을 지새웠다. 45일간의 여행을 마치니 “뭐든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입시 영어를 가르쳤다. 하지만 22살에 떠났던 첫 여행은 오래도록 그를 모험으로 이끌었다. 한 달 살기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1999년에는 프랑스에서 1년 살기에 도전하고, 2005년에는 뉴욕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여행 자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여행은 김 작가에게 평생의 동반자가 됐다.
인생 2막, 여행작가에 도전하다
여행과 영어 강사 일을 병행하던 그의 삶을 코로나19가 바꿨다. 학원 경영이 악화돼 2020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원을 그만뒀다. 갑작스레 인생 2막에 내던져졌다. 뭘 할지 고민을 거듭하고는 “나는 글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진정 좋아하는 일로 인생 2막을 살아보고자 여행작가에 도전했다. 30년간의 여행 기록을 엮어 2021년 여행책 <어서 와, 혼자 여행은 처음이지?>를 출간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전국 각지 도서관에서 여행작가 되는 법을 강의할 기회도 따라왔다.
여행작가는 같은 곳을 보더라도 다르게 보는 사람
“요즘 여행은 헤매지 않아요. 여행이 서로 엇비슷해졌죠. ”
김 작가는 여행작가지만 여행을 많이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여행한 곳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모로코,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등 30여 개국. 요즘은 출장 등을 통해서 70개국은 물론 100개국을 여행한 사람도 많다. 김 작가는 다녀온 국가 수가 많지 않아도 ‘같은 곳을 가더라도 다르게 보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여행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은 ‘헤맴’이다.
그는 요즘도 종종 비행기 티켓만 끊고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 어디서 무엇을 타고 뭘 먹을지 계획하고 떠나는 여행에서는 낯선 것과의 충돌, 헤맴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소도시를 택한다. 누구나 가는 관광지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기도 어렵다. 그는 여행작가 강의를 들으러 온 중장년에게 “길을 잃어버리라”고 조언한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5분만 길을 잃어보라고 권합니다. 직진하는 삶이 아니라 그 사이 지나는 길이 여행이에요.”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도전해보라고도 등을 떠민다. “중장년 90%가 패키지 여행을 갑니다. 한국에서 무조건 자동차로 여행하다가 외국에서 구글 맵을 보며 도보로 다니면 여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죠. 국내 다른 지방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가보세요.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여행도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인 것’
“많은 여행자들이 여행 기록을 ‘출장 보고서’처럼 씁니다. 어느 숙소에서 조식으로 뭘 먹고, 그 다음으로는 어딜 갔으며, 점심 메뉴는 뭘 먹었는지 적죠. 그런 내용으로는 독자에게 아무 감흥을 줄 수 없어요. 중장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BTS가 아니라서 아무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요.”
해외 여행 자체가 희소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여행이 ‘일반적인 경험’이 됐다. ‘나만의 여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경험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게 중요하다며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예로 들었다.
여행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록을 해야 하고, 기록하는 힘은 개인의 취향에서 나온다. 비를 좋아하면 비 오는 날의 여행 사진 남기는 것이 그의 비결이다. “예를 들어 에펠탑 사진은 흔하지만 비 오는 날의 에펠탑, 안개 낀 파리의 사진을 찍으면 같은 피사체라도 ‘엣지’있게 남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험이 최고의 재테크…'나테크'하세요
영어강사에서 여행작가로 1년 만에 전업한 그를 두고 인생 2막이 쉽게 열린 것이 아니냐는 말에 “준비 기간이 10년 이상은 걸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도 여러번.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영어강사가 됐다. 대학원에서 영화 비평을 전공하기도 했다. ‘언니네 마당’이라는 독립잡지도 만들었다. 언뜻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경험들이지만 글쓰기와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자산이 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했고, 그게 자산이 돼 인생 2막을 여는 힘이 됐다. 그는 “경험이 재테크이자 나를 위한 최고의 보험"이라며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으로 ‘나테크’를 해보라”고 강조했다. 무엇이라도 경험을 쌓는 ‘나테크’가 결국 미래를 열어줄 것이란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