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여명]‘카마리나 늪’의 비극과 한국 기업

서정명 국제부장

카마리나, 도시 보호했던 '늪' 훼손

방어막 사라져 카르타고에 멸망

韓경제, 복합위기에 불확실성 증폭

기업 발목 아니라 손 잡아 줘야 할때





카마리나는 지중해 시칠리아 섬 남쪽에 있던 고대 도시다. 북쪽에 커다란 늪이 있어 호전적인 카르타고의 침략을 막아줬다.



‘카마리나 늪’은 외세로부터 도시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기원전 5세기 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다. 카마리나 사람들은 늪이 전염병의 근원이라고 잘못 판단해 늪의 물을 전부 빼버렸다. 신탁(神託)은 시간이 지나면 역병은 사라질 것이라고 알려줬지만 어리석은 위정자들은 습지를 배수하기로 결정해버렸다. 카르타고 군대는 힘들이지 않고 늪을 가로질러 카마리나를 점령했고 주민들을 몰살했다. 당장의 난국을 모면하려 핵심 국가 자원을 스스로 갉아먹은 무지와 어리석음의 소치다.

글로벌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고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쏟아부은 경기 부양 자금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보이지 않는 공급망 전쟁은 해소되기는커녕 전선을 더욱 넓혀나가는 모양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복합 위기’는 내년에도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9%에 머물고 내년에는 2.7%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3.0%에서 내년에는 2.9%로 후퇴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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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과 수출로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한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글로벌 경제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충격파를 받는다. 국세 수입 현황을 보면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국세 수입은 305조 2000억 원에 그쳐 50조 4000억 원 펑크가 났다. 법인세가 23조 7000억 원 급감했고 소득세도 14조 6000억 원이나 줄었다. 세수 부족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재원 감소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해법은 기업 경쟁력 제고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과 투자가 늘어나고 국부가 쌓인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야는 릴레이경주하듯 표를 의식한 기업 옥죄기 정책과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 야당은 금융회사와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세는 여야 정쟁에 보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 파업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은 ‘노란’이라는 아름다운 색깔로 덧칠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불법 파업을 용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불법 파업에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하는 미국·영국·독일과 달리 노조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다.

세계는 기업 지원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독일은 기업용 전기요금을 기존 15.37유로에서 0.5유로로 97%가량 대폭 감면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내년부터 4년간 총 280억 유로(약 40조 원)를 투입한다. 아울러 앞으로 4년간 320억 유로를 들여 법인세를 줄이기로 했는데 독일 제조 기업의 99%가 혜택을 받는다. ‘잃어버린 30년’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일본은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에 장기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고 가업승계 시 증여세·상속세를 경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대표하는 인도는 법인세를 기존 30%에서 22%로 내렸으며 현지에 신설된 제조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15%까지 낮췄다. 한국 국회라면 철 지난 이념 렌즈를 들이대고 ‘기업 특혜’ 딱지를 붙일 게 뻔하다.

“본말이 전도된 지혜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고 삐딱한 분별력보다 경솔한 것은 없다.” 중세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당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저서 ‘우신예찬’에서 지적한 경구다. 당장의 인기를 얻기 위해 기업의 발목을 잡고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하책이다. 카마리나 사람들은 ‘카마리나 늪’을 훼손하는 순간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국가 미래는 생각하지 않은 채 앞뒤 가리지 않고 설익은 정책과 법안으로 기업 경쟁력을 훼손한다면 ‘카마리나 늪’의 비극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 돼 있을 것이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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