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가장 힘든 시기에 저를 대신해서 당신이 큰 노력을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최근 별세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40년 전 주고받은 편지를 4일 공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83년 2월 15일 키신저 전 장관에게 보낸 영어 편지에서 키신저 전 장관이 자신의 구명 활동에 참여한 데 대해 이같이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는 "제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키신저) 박사님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활동이 큰 영향을 줬다.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고 썼다.
김 전 대통령은 "박사님께서 1973년 8월 주한 미국대사관에 제가 대사관으로 망명을 원한다면 보호하라고 지시했다는 1974년 일본 언론 보도를 봤다"며 "한미관계에 긴장이 조성돼 있었지만 이러한 조치를 주도적으로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제가 다시 체포된 1980년 5월 이후, 특히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박사님께서 저의 안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시고 저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해주신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키신저 전 장관은 같은 달 24일 "사려 깊은 말씀을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당신은 이 나라에 아는 사람이 많고, 당신의 생명을 구한 노력은 오직 저만의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이 성공한 것이 기쁘다"고 답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때 미국이 박정희 정권에 김 전 대통령의 신변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로널드 레이너드 국무부 한국과장이 이를 주도했으며 키신저 전 장관의 역할은 미미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김대중도서관은 그의 역할 역시 컸다고 평가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번에 공개된 편지는 김대중과 키신저의 인연이 시작된 배경을 알려주는 매우 가치 있는 사료"라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2차 미국 망명 시절부터 2007년 미국에 방문했을 때까지 10여차례 이상 키신저 전 장관과 만났다.
미국 외교계의 거목으로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트고 미·소 데탕트(긴장완화)를 이끈 키신저 전 장관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9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