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난도 문항(킬러 문항)’ 배제 방침이 적용된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국어·수학·영어 영역 모두 역대급으로 어려운 ‘불수능’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어의 경우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 만점자의 표준점수)이 지난해보다 무려 16점이나 치솟으면서 어렵게 출제된 수학보다도 2점을 앞질렀다. 지난해 수능에서 수학 최고점이 국어보다 11점 높았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결과다. 교육 당국은 킬러 문항 배제에도 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한 데다 대입에서의 특정 과목 영향력 역시 크게 완화한 성공적인 수능이었다는 입장이지만 입시 업계에서는 이번 수능으로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이 대거 발생하고 이과생들이 인문계열로 교차 지원하는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 역시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달 16일 시행된 2024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 발표했다.
영역별 표준점수 최고점을 살펴보면 국어는 150점으로 지난해 수능 점수보다 무려 16점이나 올랐다. 이는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2019학년도 수능 국어와 동일한 점수다. 표준점수는 수험생의 원점수가 평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시험이 어려워 평균이 낮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이 높아지고 시험이 쉬워 평균이 높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은 낮아진다. 통상 입시 전문가들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140점만 넘어도 어려운 시험으로 본다. 실제 올 수능 국어 영역 만점자 역시 지난해 371명에서 64명으로 크게 줄었다. 역대 두 번째로 적은 수치다.
수학 역시 어려웠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지난해 145점보다 3점 높은 148점으로 이는 2022학년도부터 통합 수능이 도입된 후 최고치다. 만점자 역시 934명에서 612명으로 줄었다.
다만 국어 영역 난도가 오르면서 지난해 수능에서 11점이나 차이가 났던 국어·수학 두 과목 간 표준점수 최고점 차는 올 수능에서는 2점으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의 경우 수학 최고점이 국어보다 11점 높아 수학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특정 영역이 대입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폭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어 영역도 2018학년도 절대평가 도입 이후 가장 어렵게 출제됐다. 올 수능 영어 영역에서 90점 이상에 해당하는 1등급 비율은 4.71%로 이는 상대평가 체제의 1등급 비율인 4%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수능에서 1등급 비율은 7.83%였으며 2018학년도(10.03%)와 2021학년도(12.66%)에는 10%가 넘기도 했다.
전 영역 만점자는 1명으로 나타났다.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졸업생 1명이 만점을 취득했고 해당 학생은 과학탐구 두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이라고 설명했다. 수능 만점자는 최근 5년간 △2019학년도 9명 △2020학년도 15명 △2021학년도 6명 △2022학년도 1명 △2023학년도 3명이었다.
교육 당국은 올 수능에 대해 충분한 변별력을 갖춘 시험이었다고 자평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수능은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충분한 변별력을 갖춘 시험”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수능이 변별력은 확보했지만 전례 없이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입시 업계는 올 수능이 이례적인 수준으로 어렵게 출제됐다고 평가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05학년도 현 수능 점수 체제가 도입된 이래 역대급으로 어렵게 출제됐다”며 “수험생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어·수학·영어 영역에서 1등급 인원이 크게 줄면서 수시모집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수시모집에서 상위권 대학과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계열을 지원한 수험생의 경우 수능최저학력기준 충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능최저학력기준이 매우 높은 의대의 경우 최저 기준 미충족으로 정시 이월 인원 증가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영어 영역이 수능최저학력기준 충족 여부에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과생들이 인문계열 대학으로 교차 지원하는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도 올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남 소장은 “국어의 변별력 확보가 이과의 문과 침공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라며 “특히 최근 수능에서는 이과생의 국어 성적이 문과보다 좋은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임 대표 역시 “선택과목 간 점수 차와 문·이과 유불리, 이과생들의 문과 교차 지원 등 구조적 상황은 재연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