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요소에 이어 화학비료의 주원료인 인산암모늄에 대한 수출통제를 본격화하자 농촌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농가는 봄철 작물을 심기 전 비료를 뿌립니다. 이에 비료 제조 업체들은 12월부터 공장 가동을 최대한으로 늘립니다. 비료 공장이 가장 바쁠 시기에 중국이 원재료 수출을 제한하면서 농민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비료의 원자재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평년 톤당 300달러 수준이던 비료용 요소 가격은 최근 400달러를 웃돌았습니다. 이 와중에 중국이 인산암모늄 수출까지 규제하면서 비료 가격의 급등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인산암모늄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95%에 달합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짜며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도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불안정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무기질비료 가격 상승분의 대부분을 보조해줬습니다. 올해도 1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내년에는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습니다. 일선에선 “농촌에 줄 1000억 원이 없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전국 농가는 2년 전 ‘요소수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벼농사를 짓는 김광수(가명) 씨는 “2년 전에도 가을 타작을 앞두고 농기계용 요소가 없어 고생했다”며 “중국이 내년 1분기까지 수출제한을 유지한다는데 그때까지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농민들은 더 어려워진다”고 호소했습니다.
농식품부는 이날 “중국의 인산암모늄 수출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 비료 수급에 미칠 영향은 내년 1분기까지 제한적일 것”이라며 “인산암모늄 재고는 약 4만 톤으로, 내년 5월까지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 농가가 중국의 요소 수출통제에 타격을 받는 이유는 비료와 농기구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요소는 산업계보다 농업에 더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요소 공급이 제한되면 비료뿐 아니라 트랙터·콤바인·경운기 등 농기계가 모두 멈출 수 있어 우리 ‘식량안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국내 산업 중 요소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은 농업입니다. 지난해 전체 요소 수입 물량 87만 9000톤 중 절반이 넘는 47만 톤이 비료 생산을 위한 농업용 요소였습니다. 산업용 요소 물량은 8만여 톤 수준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10% 수준에 그칩니다. ‘요소 대란’이 벌어질 경우 농업이 가장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지난해 비료용 요소 전체 수입량(약 47만 톤) 중 55%가 1~3월과 12월에 수입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비료용 요소의 중국산 비중이 22% 수준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2021년까지는 중국 수입 의존도가 65%로 높았으나 당시 ‘요소 대란 사태’ 이후로 카타르·사우디 등 중동 국가의 비중을 16%에서 42%로 끌어올리며 중국의 비중을 낮췄습니다. 중국이 요소와 함께 수출을 제한한 인산암모늄은 요소와 달리 국내 생산이 가능합니다. 농협이 운영하는 비료 회사인 남해화학의 한 관계자는 “비료용 요소는 수출선을 카타르·사우디·말레이시아로 다양화했고 인산암모늄은 생산시설을 가진 만큼 비료 공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용 요소수 부족만으로도 농촌은 타격입니다. 트랙터 등 주요 농기계는 경유를 연료로 사용합니다. 대형 차량인 만큼 요소수 사용량도 막대합니다. 김홍식 쌀전업농경상남도연합회 사무처장은 “일반 경유 차가 요소수를 한 번 넣으면 1년은 가는 반면 농기계는 2~3일마다 요소수를 한 통씩 넣어줘야 한다”며 “2년 전 요소수 대란 때도 판매업자가 한 달 반가량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어 “겨울 작업을 앞두고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고민”이라며 “2021년 요소수 대란 당시 6000~7000원 하던 요소수를 3만 원에도 못 구해서 안달이었는데 지금은 또 어떨지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덧붙였습니다. 산업용 요소수는 농업용 요소수와 달리 중국 의존도가 91%를 넘습니다.
값이 싼 중국산 요소 대신 운송비가 많이 드는 중동·동남아산 요소를 활용할 경우 비료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는 점도 우려됩니다. 남해화학 관계자는 “비료 생산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원가 차이가 아무래도 나는 만큼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 처장은 “한 해에 드는 농사 비용 가운데 비료와 요소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40%는 될 것”이라며 “비료 가격이 뛰면 투입 비용이 더 증가하는 것이라 농가의 빚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어 “전기요금이 급등한 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줘야 하는 인건비도 크게 늘었다”며 “요소 문제 해결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농가는 ‘요소수 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벼농사를 짓는 강우석(가명) 씨는 “우리는 벼를 잘 재배해서 파는 역할인데 비료 수급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요소 수출제한 우려는 대비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농가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 9월 요소의 주요 생산국인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인도에서 중국산 요소를 대량으로 수입하며 중국 내 요소 가격이 치솟자 중국 당국이 일부 비료 생산 업체들에 비료용 요소 수출 중단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중국의 공식적인 수출규제가 없고 만약 중국이 수출을 제한해도 국내 재고 등을 고려할 때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요소 대란이 국내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관측하면서도 부랴부랴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재영 기획재정부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 부단장은 “요소 비축분이 3개월치 이상인 만큼 긴급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공공 비축 물량을 확대하고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하겠다”고 전했습니다. 국회에서도 이날 공급망 컨트롤타워를 정부 산하에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경제안보를위한공급망안정화지원기본법안(공급망기본법)’이 통과됐습니다. 지난해 10월 법안을 발의한 지 1년 2개월 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