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아베파의 몰락






일본 정치 1번지인 나가타초가 시끄럽다. 최근 불거진 정치 비자금 의혹 여파로 내각 지지율이 20%대까지 곤두박질치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내각 정무 3역에서 자민당 최대 파벌인 ‘세이와정책연구회(세이와카이)’, 통칭 ‘아베파’ 소속 15명을 모두 경질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무 3역은 각료, 부대신(차관), 대신 정무관(차관급)을 말한다. 정권 요직을 장악하며 위세를 누려온 아베파가 붕괴 위기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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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1979년 설립한 세이와카이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계파인 ‘십일회’를 뿌리로 둔 자민당 내 보수 강경 파벌이다. 비주류로 출발했지만 2000년 모리 요시로를 시작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등 4명의 총리를 배출하며 20여 년간 일본 정치를 장악해왔다. 지금도 자민당 의원 380명 중 99명이 아베파 소속이다. 통상 회장을 맡은 의원의 성씨에 따라 ‘○○파’로 불리지만 2022년 7월 당시 회장이던 아베 전 총리가 피살된 뒤로는 ‘아베파’ 명칭을 유지하며 5인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경질이 유력한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핵심 5인방에 속한다. 당 간부를 맡고 있는 나머지 3명도 교체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태로 일본 특유의 파벌 정치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 자금과 요직을 나눠주는 보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파벌 정치는 금권·밀실 정치의 폐해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1988년 ‘리쿠르트 사건’을 비롯해 과거 일본 사회를 뒤흔든 대형 부패 스캔들에는 하나같이 자민당의 파벌 보스가 연루됐다. 1994년 정치 개혁을 거쳐 파벌의 입김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국민보다 파벌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은 여전히 높다. 이 와중에 터진 대형 비자금 의혹은 파벌 비판 여론을 더욱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내의 여야 정치권에서도 계파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과 국가 이익을 위해 당론을 모으기보다 계파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패거리 정치’에 미래는 없다. 여의도는 나가타초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한다.


신경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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