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악성 종양으로 커지는 저출산·고령화

300조 투입에도 전세계 꼴찌 출산율

NYT 칼럼 ‘한국은 소멸하는가’ 경고

고령화 겹쳐 재정 악화·연금 빨간불

고질병 수술 위해 與野 머리 맞대야





영국은 한때 고(高)복지와 고(高)비용·저(低)효율로 대표되는 ‘영국병’을 앓았다. 과도한 복지에 따른 재정 악화는 결국 복지 정책의 위기를 초래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1979년 총리 취임 직후 복지제도에 대한 과감한 수술을 단행했다. 무분별한 복지 정책이 시장을 왜곡시키지 않고 근로 의욕을 꺾지 않도록 복지 혜택을 줄여나갔다. 정치력과 뚝심으로 밀어붙인 끝에 영국은 고질적인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게도 치료해야 할 ‘한국병’이 있다. 저출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2020년 1.48명을 기록한 합계출산율은 2018년에 0.98명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아래다. 올해 3분기 합계 출산율은 0.7명 수준까지 추락했다. 전 세계에서 단연 꼴찌다. 인구학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가 “한국의 저출산이 지속되면 2750년 국가가 소멸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2075년으로 가는 길’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저출산·고령화로 2060년대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부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00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며 저출산 문제에 대응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치권이 보여주기 식으로 예산을 편성하면서 저출산 대책 예산은 눈 먼 돈으로 전락했다.



고령화 문제도 우리가 풀어야 할 난제다. OECD는 올해 초 한국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2025년에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 노인인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60년에 노인 인구가 전체의 43.9%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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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와 맞물린 고령화 현상은 다양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전국의 모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무임승차제도는 사회 갈등 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심지어 영국의 로이터통신도 최근 ‘한국의 골칫거리가 된 노인 무임승차제도’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의 과도한 노인 복지 혜택과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을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논란은 노인 복지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의 광범위한 과제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고령화로 무임승차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점이다.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년 동안 흑자를 보인 건보 재정이 2024년 다시 적자(-4조 8000억 원)로 돌아선 뒤 적자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국민연금도 기금 고갈 시점이 갈수록 당겨지면서 미래 세대에 부담만 지울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55년에 모두 소진될 위기에 처했다. 5년 전 예상했던 2057년보다 2년이나 고갈 시점이 앞당겨진 셈이다.

이미 적립 기금이 모두 소진된 공무원·군인연금은 나랏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전락했다. 두 연금에 투입되는 재정이 올해 9조 7000억 원에 이르고 2027년에는 12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는 기획재정부의 보고를 흘려들을 때가 아니다. 연금 개혁 지체 등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선심 입법을 남발하고 있다. 여야는 2021년에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 예비타당성 면제 특별법을 통과시켜 국가 재정에 부담만 떠넘겼다. 올해 4월에는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공항 이전을 위한 특별법을 나눠먹기 식으로 밀어붙였다. 게다가 여야 담합으로 ‘대구~광주 달빛고속철도’ 예타 면제를 위한 특별법 연내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악성 종양으로 커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 한국병 치료를 서둘러야 할 때다. 내년 4월 총선에서 포퓰리즘 정책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면 미래 세대에 재앙만 안겨주게 된다. 고질병을 수술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여야 정치권이 절박한 심정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김상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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