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사랑받기를 포기한 당신에게

우리 가슴은 '더 많은 사랑' 갈망

주변과 차단·은둔 외톨이 있다면

홀로 내버려두지 말고 관심 갖길





사랑받기를 포기한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첫 번째 기억은 ‘부모는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던 어린 시절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부모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지만, 내 안에 ‘아직 사랑받지 못한 영원한 내면아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안타까운 내면아이를 일깨워준 작품이 바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아이’다.

주인공은 아직 어린 소녀지만 어른들의 감정을 매우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엄마가 다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뒤, 소녀는 친척집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다. 킨셀라 부부는 지극 정성으로 아이를 보살펴주고, 아이는 킨셀라 부부에게 죽은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에 대한 사랑은 단지 잃어버린 아들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상에 하나뿐인 이 소녀’ 그 자체를 향한 사랑으로 바뀌어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은 아이가 부모에게 돌아와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장면이다. 아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재채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녀의 아버지는 골칫거리가 하나 더 생긴 듯 귀찮게 여긴다. “그 꼴로 돌아오다니, 잘한다.”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한 소녀는 이제 막 소녀를 데려다주고 떠나려 하는 킨셀라 부부에게 일체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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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이별 장면은 독자의 눈물을 쏙 빼놓는다. 참고 또 참던 눈물이 마지막에 터지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내 안의 또 다른 소녀를 꼭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은 왜 그토록 뜨거운 갈망으로 가득했을까. 부모가 있었지만 왜 ‘더 다정하고, 더 친절하고, 더 나를 사랑해주는 또 하나의 부모’를 갈망했던 것일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더 깊이, 더 열렬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이 소녀가 건드린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줄줄이 많은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엄격해진 엄마를 보며 소녀는 엄마에겐 아무것도 부탁할 수 없음을 깨닫지 않았을까. 조르지도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는 아이. 그래봤자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소녀는 사랑받기를 체념한 아이였다.

그러나 킨셀라 부부에게서 느닷없이 따뜻하고 거침없이 환하며 지혜롭고 사려깊기까지 한 배려와 교육을 받고 나니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들의 짐작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존재로 변신한다.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한 것이다.

당신 주변에 홀로 은둔하며 그 누구의 관심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날 건드리지 마’라고 온몸으로 외치면서 주변의 관심 자체를 차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부디 그 사람을 홀로 내버려두지 말기를. 무관심을 요구하는 마음조차 실은 더 깊고 진정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우리 모두 똑같은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모두가 잊지 말았으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절, 부디 우리 곁에서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내면아이를 돌봐주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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