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능력평가 16위인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사실상 워크아웃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올해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브리지론의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과 착공 및 분양이 지연된 영향이 크다. 부동산 개발 사업의 자금 조달은 크게 두 단계로 착공 전 초기 사업비를 조달하는 브리지론과 착공 후 브리지론 상환 자금 및 초기 공사비를 확보하는 본 PF로 나뉜다. 이후 수분양자들에게 분양 대금을 받아 공사비와 본 PF를 일부 상환하고 준공 후 입주 시 잔금을 받아 모든 대출을 청산한다.
그러나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면서 본 PF에 자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크게 줄었다.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이 20% 이상 오르는 등 공사 원가가 치솟고 인력난과 인플레이션으로 인건비까지 상승해 사업 수익성이 꺾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건설사 보증으로 브리지론을 조달해 부지를 확보했지만 본 PF로 전환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놓인 ‘미착공 사업장’이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의 PF 보증(연대보증·채무인수·자금보충) 가운데 현실화 가능성이 큰 도급 사업 PF 보증 규모는 19조 1000억 원으로 이 중 67%가 미착공 사업장이다.
태영건설은 당장 28일 ‘성수동 오피스2 개발 사업’을 위해 조달한 브리지론 만기를 앞두고 있다. 지하 6층~지상 11층짜리 업무 시설을 짓는 사업으로 당초 이달 18일 만기였으나 대주단과 협의해 열흘을 연장한 상태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채권단이 동의해 자율 협의회 공동 관리 절차를 개시했다”면서도 “지주공동사업 전환 등 몇 가지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협상 중”이라고 전했다. 이지스자산운용과 태영건설은 해당 부지를 1600억 원가량에 매입하기 위해 브리지론 480억 원을 일으켰으나 이 중 432억 원이 잔액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까지 보유한 포천파워 지분 840만 주를 전량 매각해 확보한 265억 원과 2400억 원에 달하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등으로 당장의 급한 불을 끄더라도 내년 1분기 4361억 원 규모의 대출 만기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 3000억 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가 예상됐던 수도권 사업 용지인 경기 부천 군부대 현대화 및 도시개발사업 지분 매각도 진척이 없는 상태다. 한신평에 따르면 내년까지 총 3조 6027억 원의 우발채무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투자증권과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의 만기 도래도 유동성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21일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며 “올해 말 태영건설 보유 현금성 자산은 약 3000억 원 수준으로 월별 회수 예정인 공사 대금 등을 감안할 경우 단기 유동성 대응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내년 3월 펀드의 차환 여부가 유동성 리스크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회사들에 대출을 제공하기 위해 태영건설과 한국투자증권이 각각 800억 원, 2000억 원을 납입해 조성된 펀드로 연장 실패 시 담보로 설정한 ‘루나엑스CC’가 한국투자증권으로 넘어간다.
PF 위기는 다른 건설사들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PF 위기로 신용등급이 부여된 건설사 21곳 중 올해 등급이 강등(전망 포함)된 건설사는 8곳으로 약 40%에 달한다.
그간 건설사들에 높은 수익을 안겨주던 자체 사업이 리스크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동부건설은 인천 검단신도시와 영종하늘도시 등 자체 사업장에 올해만 1006억 원의 용지 대금을 투입했다. 지난해 영업이익(413억 원)의 두 배 이상 되는 수준으로 내년 말까지 약 1500억 원의 토지 대금 납부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 자금 회수를 위해서는 착공에 들어가 분양을 시작해야 하지만 경기 침체로 분양 시점을 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 당국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은 26일 저녁 ‘F(Finance)4 회의’를 갖고 태영건설 워크아웃 가능성과 그 파장 등을 논의한 바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21일 주재한 회의에서 “금융시장 불안 요인 발생 시 즉각적이고 충분하고 과감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개별 기업·사업장 이슈보다는 PF 사업장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 게 금융 당국의 주 고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