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월급 없어도…가상 회사서 청년의 꿈 키우죠"

박은미·전성신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취업 공백기 청년에 관계망 제공

'니트인'1000여명 가상회사 거쳐가

자신만의 일 열중하며 미래 준비

직장 없다고 '아무것도 안함' 아냐

새로운 일의 모습도 인정해주길

박은미(왼쪽)·전성신 니트생활자 공동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갤러리어스에서 열린 니트컴퍼니 14·15기 전시 행사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박은미(왼쪽)·전성신 니트생활자 공동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갤러리어스에서 열린 니트컴퍼니 14·15기 전시 행사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




“그동안 저희와 함께한 ‘니트인’만 1000명은 훌쩍 넘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어디 가나 니트인이 있다는 말이 들려 무척 기쁩니다.”



무업(無業) 상태의 청년들에게 관계망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의 박은미·전성신 공동 대표는 지난 시간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서로 감정을 나누고 응원하는 정도였는데 마음이 맞으니 가까워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걸 함께 시도하거나 도전하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며 “그런 단단한 관계들이 우리 커뮤니티 내에서 차곡차곡 쌓여 어디인가에서 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니트생활자의 핵심 활동은 자칭 ‘니트’들이 출근하는 가상 회사인 니트컴퍼니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100여 명의 무업 청년들이 모여 12주간 진행되는 니트컴퍼니는 벌써 15기까지 진행됐다. 사무실도, 월급도, 사장님도 없는 가상의 회사에 출근하는 청년들은 나를 위한 나만의 일에 몰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청소를 하고 누군가는 글을 쓴다. 혹은 계획성 없는 나를 바꾸고자 매일 ‘투두 리스트(할 일 목록)’를 만들어 지키고 혹자는 직업 전문성을 쌓고자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 쏟아부은 12주는 졸업 행사와 같은 전시를 통해 기록되고 공개된다. 전 대표는 “주제부터 배치나 구조, 홍보나 이벤트까지 모든 활동을 니트컴퍼니 소속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전시”라고 말했다. “다른 이에게는 일을 쉬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인생의 공백기로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보낸 시간이잖아요. 저마다의 기록을 모아 내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자랑하는 거죠.”

니트생활자의 시작은 단순했다. 취직과 퇴사를 반복하다 다시 퇴직하게 된 박 대표가 공백기를 조금 더 건강하고 활력 있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사람들을 모았다. “백수의 시간에는 고립되기 쉽거든요. 만날 사람도 없고 만날 기회도 없으니.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는지가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일단 한번 모여보자, 만나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다들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다들 뭐하고 지내는지 자기들도 너무 궁금했다고.” 그렇게 만남을 거듭하다 보니 이런 모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편안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안전망, 어떤 활동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관계없이 서로 지지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많은 사람이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정기 만남이 정기 모임이 되고 전 직장 동료로 박 대표의 활동을 지원해주던 전 대표가 합류하며 니트생활자가 꾸려졌다.




니트생활자는 최근 니트컴퍼니를 넘어 청년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도록 독려하는 ‘니트인베스트먼트’, 니트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 ‘닛커넥트’ 등의 활동을 더하며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다양한 니트 청년들의 요구를 충족해주기 위해서다. 니트생활자를 찾는 연령대는 20대 중후반~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전 대표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해 고민이 깊지만 고민하면서도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년들이 가장 많다”고 했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괴로운 청년들과 프리랜서지만 스스로를 반백수라고 생각하는 청년, 대학 휴학생이나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은 비진학 청년, 자립 준비 청년들도 문을 많이 두드린다. 박 대표는 “니트컴퍼니를 나가 취업한 후에도 커뮤니티에서 계속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며 “회사 생활이 힘든데 니트인 덕분에 극복한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졸업 그룹 커뮤니티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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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공해주는 것은 그저 몇 가지 접점”이라지만 결과로만 보면 웬만한 취업 지원 활동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점은 인상 깊다. 실제로 니트컴퍼니를 경험한 청년들이 지금도 잘 지내는지 조사해봤더니 60%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표들은 그보다 니트를 통해 맺어진 수많은 관계망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에 좀 더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장수 고시생이었다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한 참여자는 ‘니트컴퍼니가 아니었다면 자기는 아직도 골방에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도 다른 청년들을 위해 멘토링 등을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공간 임대 사업을 시작한 다른 참여자 역시 지역 청년 커뮤니티의 장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창업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했다.

청년 10명 중 4명은 일하지 않고 있다는 오늘날 니트생활자에서 청년들이 보여주는 활동의 의미는 적지 않다. 박 대표는 청년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청년들 중에는 ‘취업’ 혹은 ‘정규직’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아주 많다”며 “4대 보험 가입은 되지 않았지만 글도 쓰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유튜브·블로그 등도 하며 수익 창출을 하는데 노동 통계에서는 ‘일하지 않는 청년’으로 기록된다는 건 열심히 사는 청년들에게 일종의 상실감을 준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그렇게 무기력하던 청년들이 월급도 없는 니트컴퍼니에서는 왜 그토록 활기찬지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전 대표는 “청년들이 힘든 일을 못 견딘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자기 주도성’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고 휩쓸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빠르게 번아웃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니트생활자 활동을 계속하며 청년 실업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다.

“가뜩이나 일이 없어지고 있는 시대잖아요. 기존의 노동시장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왕이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야 따라오는 후배들도 ‘저런 길도 있었네’라며 선택지를 넓게 볼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글·사진=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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