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그 외 산유국들이 가격을 쥐고 흔들던 글로벌 원유 시장이 미국 쪽으로 재편되고 있다. 최근 2년 새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OPEC의 원유 감산 계획에도 유가가 폭등하지 않고 오히려 하락했다. 중동 전쟁으로 인해 우려됐던 유가 상승 압력도 완화하는 모양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CNBC는 에너지정보국(EIA)의 추정치를 인용해 이달 12일 기준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330만 배럴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한 미국은 올해에도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맥쿼리의 에너지 전략가 월트 챈슬러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겨울에 소폭 감소했다가 올해 하루 생산량은 140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세계 원유 가격은 OPEC과 그 외 산유국들의 생산량에 달려 있었으나,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기록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의 원유 가격 영향력이 커졌다. 앞서 홍해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과 OPEC의 하루 220만 배럴 석유 감산 계획에도 미국의 석유 생산 변수로 오히려 유가는 하락세를 나타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홍해 분쟁으로 인해 석유 운송 중요 항로가 차단되고 수많은 테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넘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등 비 산유국 국가들의 석유 생산량 증가로 올해에는 석유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IEA는 12월 전망에서 “글로벌 석유 공급이 중동의 주요 생산국에서 미국 및 기타 대서양 유역 국가로 이동하면서 글로벌 석유 무역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밝혔다. IEA의 1월 예측에 따르면, OPEC 이외 지역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OPEC+가 자발적인 감산을 철회할 경우 2분기에 원유 공급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의 석유 생산 덕분에 지정학적 위험은 낮아졌지만, 중동의 긴장이 이란과의 직접적인 대결로 이어져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유가가 오를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운송이 장기간 중단되면 유가가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