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에서 과속 차량을 단속하기 위해 도로변에 설치한 무인 감시카메라가 이른바 '플렉시맨'으로 불리는 범인으로 인해 자주 파손되면서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지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플렉시맨'이 '현대판 로빈후드'로 추앙받고 있어 당국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북부 지역에서 최근 8개월 동안 파손된 과속 단속 카메라는 줄잡아 20개에 이른다. 피해 지역은 광범위하지만 범행 수법은 거의 동일했다.
범인은 새벽 1∼2시에 도로변 과속 단속 카메라에 접근해 앵글 그라인더로 카메라를 지지하는 기둥을 두 동강 낸 뒤 사라졌다.
지난해 5월 이후 유사 범죄가 계속되자 정체불명의 범인에게 '플렉시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54년 앵글 그라인더를 개발한 독일 회사 플렉스(FLEX)에서 따온 별명이다.
북부 경찰은 ‘플렉시맨’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좀처럼 잡히지 않는 플렉시맨은 운전자 사이에서 현대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모든 영웅이 망토를 입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웅은 앵글 그라인더를 갖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파도바주에서는 플렉시맨을 영화 '킬 빌'의 주연 여배우 우마 서먼 스타일로 묘사한 벽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시민들이 플렉시맨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가 과속 단속 카메라를 지나치게 많이 설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과속 단속 카메라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곳까지 설치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보다는 돈을 거둬들이는 용도로 쓰고 있다는 얘기다.
플렉시맨이 활개를 치면서 일부 운전자가 과속 단속 카메라에 돌을 던지는 등 모방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일부 공무원은 플렉시맨의 범행을 두둔하기도 했다. 파도바주 빌라 델 콘테시의 시장인 안토넬라 아르젠티는 "과속 단속 카메라는 억압적인 도구이며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3배나 많다"며 "우리는 교육과 예방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동조 여론이 높아지자 베네토·롬바르디아 당국은 플렉시맨의 범행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범죄 묵인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