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돌을 든 괴한으로부터 피습을 당해 피를 흘리고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된 지 불과 23일이다. 지난해 연쇄 칼부림 사건처럼 이 대표와 배 의원의 피습을 시작으로 또다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벌어져 일종의 ‘모방 범죄’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배 의원은 이날 오후 5시 18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거리에서 신원 미상의 행인으로부터 돌로 머리 뒤를 가격당했다. 괴한은 ‘배 의원이 맞느냐’고 두 차례 물으며 접근했고 배 의원이 인사하며 다가가자 돌변해 범행을 저질렀다. 배 의원은 곧바로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피를 많이 흘렸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두피에 1㎝ 정도의 열상을 입어 두 번 스테이플러로 봉합했다”면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배 의원은 수행비서와 함께 개인 일정을 위해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배 의원의 수행비서에게 붙잡혔고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특수폭행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미성년자 피의자를 이보호자 입회하에 조사한 뒤 이날 새벽 응급입원 조처했다. 응급입원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자·타해 위험이 있어 사정이 급박한 경우 정신의료 기관에 3일 이내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경찰은 “피의자가 미성년자인 점과 현재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했다”며 “향후 범행동기 등을 면밀히 조사하는 등 엄정히 수사할 예정”고 설명했다. 배 의원 측은 “피의자가 면식범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자세한 건 경찰 수사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이 대표의 피습 이후 벌어진 모방 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 대표 피습 이후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8일부터 정치인 신변보호팀을 편성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증가할 수 있다”며 “보다 적극적인 경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도 모방범죄가 급증할 수 있다며 정치인에 대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지난해 칼부림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이번 사건도 모방범죄인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에 몰입을 크게한 일부에게 동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상의 위협을 느끼는 정치인에 대해 경호 조처를 하고 정치인 본인도 주의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상훈 우석대 교수도 이번 사건을 모방범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 교수는 “이재명 대표를 상대로 한 피습이 워낙 회자했기에 확실히 모방범죄같이 보인다”며 “가장 사회적 혼란이 커질 때는 또 다른 모방범죄로 다른 정치인을 노린 테러가 이어지는 경우”라고 우려했다. 다만 "보통 나이가 든 극성 지지자라면 ‘정치색이 강하다’라는 등 통념으로 해석할 여지가 생기는데 10대라면 그렇게 해석하기가 어려워 수사 과정에서 공격 이유가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이 대표 피습 이후 23일 만에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또다시 발생하자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배 의원을 병문안하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배 의원은 잘 이겨내고 계시고, 국민들께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 외에도 장동혁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도 배 의원을 찾아 정치 테러를 규탄했다. 이 대표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어떠한 정치 테러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배 의원의 조속한 쾌유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불안이 증폭되자 정부는 정치 테러 재발에 대한 긴급 지시문을 발표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찰청에 “총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안전 확보와 유사 범죄 예방에 전력을 쏟아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