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끝나고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거든요. "
이달 초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순환기내과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이모씨(83·남)는 “어려운 시술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의료진을 믿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지난해 팔십 평생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장파열로 9월 중순 장 절제술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들었는데 폐에 물이 찬 상태가 지속돼 며칠이 지나도록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했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고심하던 의료진은 한달 뒤 다시 시행한 심장초음파 검사에서 폐가 아닌 심장의 문제였음을 알게 됐다.
◇ 나이 들수록 심장 판막 기능도 저하…대동맥판막 망가지면 2년 내 절반 사망
성인의 심장은 하루 평균 10만 번 뛴다. 이 과정에서 평균 7200리터의 혈액을 온 몸으로 내보내는데 심장 내부에 존재하는 4개의 판막이 피가 거꾸로 흐르지 않도록 막아주는 문의 역할을 한다. 이씨의 경우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흐르는 혈액의 역류를 막는 대동맥 판막이 심하게 좁아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대동맥판막이 노화되어 혈액 이동에 장애가 생기는 대동맥판막 협착증(aortic stenosis)이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생기면 심장에서 혈액이 원활히 분출되지 못해 호흡 곤란·가슴 통증·실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방치하면 2년 이내 사망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의료진은 환자가 고령인데다 장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은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만큼 가슴을 열지 않고 대동맥판막을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TAVR·Transcatheter Aortic Valve Replacement)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수술 부담 큰 고령 환자…시술시간 짧고 회복 빠른 ‘타비’ 시술이 대안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의 가슴을 여는 대신 스텐트 형태의 인공 판막을 경피적으로 삽입하는 방법으로 흔히 ‘타비’라고 불린다. 허벅지나 쇄골 아래 동맥 등을 통해 심장 판막에 접근한 다음 좁아져 있는 판막 사이에 기존 판막을 대체할 인공 판막 스텐트를 넣어 고정하는 방식이다. 심뇌혈관 중재시술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지만 시술 시간이 짧고 통증이 적으며 평균 입원기간이 일주일 정도로 개흉수술에 비해 짧아 고령이나 수술 위험성이 높은 환자에게 주로 시행되는 방법이다. 특히 심장을 멈추지 않아도 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전신마취가 아닌 수면마취로도 시술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타비 시술을 위해 정밀검사를 시행하던 의료진은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대동맥판막은 3개의 얇은 소엽으로 구성된다. 위에서 내려다 볼때 'ㅅ'자 모양을 하고 있어야 정상이지만 이씨는 소엽이 2개 뿐이었다. 선천성 기형인 이엽성 판막은 수술이 표준 치료로 권고된다. 심지어 이씨의 심장은 판막부터 심장혈관까지 전부 칼슘염이 쌓여 굳어지는 석회화가 진행돼 있었다. 주치의인 천대영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고령 환자는 대부분 대동맥 판막에 석회화가 동반돼 타비 시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면서도 “해당 환자는 판막 뿐 아니라 심장혈관 전체가 돌로 뒤덮여 있어 시술 중 석회화된 대동맥 판막 및 심장이 파열되거나 새로운 판막이 제대로 삽입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 “1mm 오차도 허용 못한다” 환자 뜻 따라 초정밀 시술 도전
의료진은 ‘판막 상태를 분석해 볼 때 시술은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수술을 진행하는 편이 낫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이씨는 ‘죽는 한이 있어도 수술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며 버텼다. 타비 시술을 진행하려면 규정상 최소 순환기내과 교수 2명과 흉부외과 교수 2명을 포함해 영상의학과·마취과 등 여러 진료과가 상의해 모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오랜 회의 끝에 타비 시술을 하기로 결정했고 11월 30일로 잡혔다.
천 교수와 함께 시술장에 들어간 순환기내과 한성우 진료부원장, 최재혁 교수와 한림대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고윤석 교수는 허벅지 동맥으로 도관을 삽입한 뒤 석회를 깨뜨리기 위한 풍선확장술을 시행했다. 조직 판막을 삽입해 고장난 판막을 교체했고 재차 풍선확장술로 협착된 부위를 넓혔다. 통상 곧바로 판막을 삽입하지만 이씨의 경우 석회화가 심해 풍선확장술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압력이 약하면 석회가 깨지지 않아 이식한 판막이 완전히 펴질 수 없고 압력이 조금만 지나쳐도 석회화된 혈관이 찢어질 수 있다. 심장을 멈추지 않고 진행하는 타비 시술의 특성상 심장이 뛰고 있는 상황에서 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약 30분 만에 시술이 끝나고 새로운 판막이 정확한 위치에 삽입돼 완전하게 펼쳐져 100% 기능하는 것을 확인한 의료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술 후 열흘이 채 되기 전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한 이 씨는 장기간 입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다. 지금은 매일 30분씩 걷기 운동을 할 정도로 호전돼 외래진료를 받으며 추적 관찰을 진행 중이다.
◇ 치료 받으면 정상생활 가능…“심장초음파로 조기 발견 힘써야”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는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동맥판막 협착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018년 1만3787명에서 2022년 2만1062명으로 늘었다. 2012년 11월 신의료기술로 지정되며 국내 시행 길이 열렸던 타비 시술은 10여년새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 2022년 건강보험급여 확대로 환자의 본인부담률도 크게 낮아졌다.
천 교수는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치료만 받으면 정상 생활이 가능한데 증상이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다 보니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며 “70세가 넘어 갑자기 2~3초 가량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 심장기능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