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의대정원' 놓고 1년간 잽만 주고 받던 정부·의협…2월 초 정부 ‘카운터 펀치’ 나온다

1년간 머리만 맞대 의료현안협의체…성과 못 내며 무용론만 커져

명분 쌓기 끝난 정부, 2월 초 필수의료패키지·의대정원 증원 발표로 선제공격

의료계 파업 예고에 정부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 못 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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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양측 선수가 펀치를 주고 받고 있다. AP연합뉴스최근 미국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양측 선수가 펀치를 주고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약속 대련’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격투기 운동에서 약속 대련이란 실제 시합이 아니라 각자가 갖고 있는 기술을 상대방에게 적용해 보고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한 스파링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다치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펀치(punch)와 킥(kick) 등 타격도 가볍게 하고 주짓수(Jiu-Jitsu) 스파링 때도 관절 부위를 세게 꺾지 않는다. 즉 약속 대련은 선수 모두 실력을 키우기 위한, 즉 윈윈(Win-Win) 하기 위한 과정이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무너진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리겠다며 머리를 맞댄 지 1년이 넘었다. 하지만 양측은 약속 대련 장소에 형식적으로 참석했다. 서로 킥을 날리지도 펀치를 날리지도 않고, 그저 1주일에 한번씩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 모여 앉아 있다가 다시 헤어졌다. 그렇게 1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의료현안협의체. 연합뉴스의료현안협의체.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 캡쳐대한의사협회 캡쳐


의협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바로 뜨는 팝업 창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을 강력 규탄한다'라고 쓰여 있다. 정부는 의협과 1년 넘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의협은 ‘적정 의사인력 수급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인 계획이 부재하다'라고 주장한다. 의협은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지역·필수의료 혁신전략에서 각 의과대학에 증원에 대한 수요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이후부터 비과학적인 통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별 수요조사 결과, 정부의 최종 의대정원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비과학적인 통계’라고 못을 박아버린 것. 이는 토론 과정에서 전형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차단하는 ‘원천봉쇄의 오류’에 해당한다.

각론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의협은 정부 내 전담조직이 부재하다고 주장한다. 의대정원과 관련해서 보건의료정책실 아래에만 보건의료정책과, 의료인력정책과, 의료자원정책과, 의료기관정책과 등이 있고 이외에도 여러 개의 과(科)가 있다. 각 과마다 부이사관에서 서기관급 과장부터 주무관까지 적게는 13명부터 많게는 20명이 넘는 직원들이 있다. 이들 자체가 의대정원 증원을 위한 전담조직인 셈이다.

또 의협은 ‘정부가 일부 연구자들의 편향적 연구결과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의대정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립대와 사립대 연구진을 비롯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다양하다. 의협 측이 현재는 의대정원 증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관련 연구분석 결과를 정부 측에 제출하고 정부를 설득하면 된다.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여러 차례 ‘밤샘토론, 끝장토론이라도 하자’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다른 각론을 살펴보자. 의협은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주장하면서 ‘국가별 각기 다른 보건의료제도, 의료 접근성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타당한 말이다. 국가별 보건의료제도는 모두 상이하다. 혹자는 1977년 도입된 기형적 건강보험 제도가 수가 인상요인을 차단해왔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필수의료 붕괴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분명 이 같은 요인도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의대정원 증원을 원천 차단하는 논리로 삼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단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만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OECD 통계는 전 세계 정부가 정책수단의 지표로 삼는 공신력 있는 자료다. 의협은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의사수라는 통계에 대해서는 ‘한국은 의료접근성이 세계최고’라며 OECD 통계를 부정하면서 ‘OECD 평균 의사 업무량과 비교해 한국 의사의 업무량은 과다하고 수가는 3분의 1’이라고 선별적 통계를 차용하는 것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복싱 경기의 한 장면. 한 동양인(오른쪽) 선수가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다. AFP연합뉴스복싱 경기의 한 장면. 한 동양인(오른쪽) 선수가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의협의 주장은 “나 아직 글러브도 끼지도 않았고 마우스 피스도 안 꼈는데 잽을 왜 날려? 이거 반칙 아니야? 하지만 나는 계속 계속 대련할거야. 근데 너가 계속 나 가격하면 나는 링에서 나갈거야. 니가 몰수패 당하는거야.”로 읽힌다.

본래 협상이란 서로가 가진 패를 꺼내 놓고 서로 거래를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현안협의체는 협상의 장(場)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양측 간의 지난한 약속대련이 결코 약속대련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복지부는 지난 15일 의협에 2025학년도 의대입학 정원의 적정 증원 규모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이제 실제 시합에 들어갈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라는 의미다. 정부는 이르면 2월 초에 의대정원 증원규모와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대정원 증원 보도자료는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박민수 2차관,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 등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지역 의료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청취했고, 의료현안협의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다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여기에다 의대 정원증원 관련 의견을 듣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이 만난 인원이 수천명에 달하고 이동한 거리가 수천키로에 달한다는 설명도 들어갈 수 있다. 최근 조 장관은 일본까지 날아가 후생성 장관과 일본 의협 관계자들을 만나고 의대정원 증원 사례를 듣고 왔다. 정부 입장에서 명분쌓기가 끝난 것이다.

이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의 의대정원 정책에 파업도 불사할 수 있음을 예고했고 이에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본격적인 시합은 의대정원 증원발표 이후에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정부와 의료계의 시합에서는 정부가 수건을 던지며 기권패를 한 바 있다. 2월 초는 1년 넘게 진행돼 온 정부와 의협 간 약속대련이 시합으로 바뀌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레프리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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