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문정동, 지하철 8호선 문정역 인근에 위치한 테라타워, 엠스테이트, 지식산업센터에는 바이오벤처가 약 60여개 모여 있다. 바이오벤처들은 2019년부터 문정동에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문정동은 서울에 위치해 있지만 판교보다 임대료가 저렴했다. 웰마커바이오, 에이피트바이오 등이 2019년 무렵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중심부와 가까운 사통팔달의 입지와 저렴한 임대료 등의 장점이 입소문을 타며 바이오벤처들이 지속적으로 몰려 들었고 현재 모습이 됐다.
문정 클러스터의 가장 큰 장점은 입지다. 바이오벤처들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 확보가 필수다. 투자자와 비즈니스 미팅은 물론 뛰어난 인력이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문정동은 강남과 가깝고 서울 중심부인 여의도까지 대중 교통으로 약 1시간 내외다. 바이오벤처가 입주해 있는 테라타워, 엠스테이트 등은 모두 8호선 문정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다.
문정 클러스터에는 현재 신약개발 및 진단 업체, 임상시험수탁기관(CRO)기관이 모여 있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문정 클러스터가 형성된 처음에는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았다. 제한된 R&D 자금, 초기 단계 연구 등 여러가지 이유로 협업을 할 여력이 부족했다. 최근에는 본격적인 모임을 가지며 서로 시너지를 낼 부분을 찾아가고 있다. 윤선주 에이피트바이오 대표는 “가벼운 티타임이나 퇴근 이후 저녁을 함께 하며 협업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후보 물질의 동물 실험이 가능한지 등 물어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문정동에 위치한 바이오벤처들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9월 ‘문정 바이오 최고경영자(CEO) 포럼’을 출범시켰다. 정보 공유와 협업 기회를 적극 모색하기 위해서다. 초대 회장은 제약·바이오 업계 원로인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회장이 맡았다. 이 회장은 “기쁨과 고통 모두 공유하자는 취지”라고 포럼의 출범 의미를 밝혔다. 2대 회장은 조용준 동구바이오제약 대표가 선출됐다. 조 대표는 “회원사간 전문성과 다양성이 융합돼 향후 새로운 가치 창출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정 클러스터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 바이오벤처도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알레르기 치료제 ‘GI-301’을 일본 피부과 분야 선도 기업인 마루호에 2980억 원 규모로 기술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지아이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문정에 위치한 기업들과 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직접 만나 논의를 진행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문정 클러스터 입주 바이오벤처들도 최근 몇년간 이어진 고금리 기조에 따른 자본 시장 한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최근 A사는 사무실을 축소 이전했다. 기존에 10여명의 임직원이 함게 일했는데 운영난을 겪으며 3명으로 줄였다. 정부 지원으로 근근히 버텼는데 신규 투자가 어려워지며 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 A대표는 “올해는 연구하던 신약 후보물질을 포함해 회사 자체를 다른 기업에 넘길 생각” 이라며 “버텨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어렵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보유한 기술이 뛰어나면 신규 투자를 받는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부 바이오벤처가 투자자의 신뢰를 져버렸기 때문에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폐업하는 바이오벤처가 늘어날 경우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여러 바이오벤처들이 적극적으로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도전해야 훌륭한 신약 후보 물질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며 “자금 조달 등의 문제로 바이오벤처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