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사주를 악용해 추가 출자 없이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편법을 막겠다며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규 배정을 금지하고 소각 계획 등 공시 규정을 강화했다. 기업들이 자사주를 주주가치 환원이 아닌 대주주의 경영권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국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진단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다만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포이즌필(기존 주주에게 시세보다 싼값에 신주를 발행하도록 한 제도) 등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30일 금융위원회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상장법인 자사주 제도개선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장법인의 자사주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자사주는 본인이 발행한 주식을 다시 취득해 보관하는 주식으로 과거에는 금지됐다. 그러나 주주가치 제고 등을 위해 1992년 이후 단계적으로 허용되다가 2011년 상법 개정 이후 비상장기업도 배당가능이익 한도 안에서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자사주 취득·소각은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 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취득한 후 소각하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식 수당 당기순이익이 증가하면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주주 환원 목적의 자사주 취득·소각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정부는 기업들이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를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적분할은 지분 구조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둘로 나누는 방식이다. 기존 회사의 지분 40%를 가진 주주는 인적분할 이후 존속회사뿐 아니라 신설 회사에 대해서도 지분 40%를 갖는다. 이때 기존 회사의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지분이 30%라면 새로 배정받는 신설 회사 지분 30%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자사주의 마법’이 발생한다. 이를 통해 기존 회사의 지배주주는 추가 출자 없이도 신설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2016~2022년 분석 결과 상장사 인적분할 사례 중 자사주 보유법인(34곳)은 모두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해 최대주주는 일반주주 비용으로 신설법인 지분율을 추가 확보했다. 최대주주의 실질지분율은 분할 전 평균 39.9%에서 이후 43.5%로 확대됐다. OCI는 2022년 11월 인적분할을 공시한 후 자사주 30만주(1.26%)를 취득했고 이를 통해 최대주주 일가는 OCI와 OCI홀딩스 지분을 늘리는 효과를 냈다. 인적분할 이후 ‘자사주의 마법’ 사례로 꼽히며 주가가 하락한 바 있다. 동국제강도 동국홀딩스(지주사)를 존속회사로 하면서 동국제강(열연)과 동국씨엠(냉연)을 인적분할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분율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사주에 대해서는 의결권·배당권·신주인수권 등 거의 모든 주주권이 정지되지만 인적분할은 명확한 법령·판례가 없어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해왔다”며 “자사주 마법이 발생하면서 회사 자금이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데 활용된다는 비판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상장법인에 대해 인적분할 시 신규 배정을 금지하기로 했다. 또 인적분할 후 재상장할 경우 배당 확대 등 종합적인 투자자 보호 방안을 요구하는 등 상장 심사도 강화한다. 자사주를 일정 규모 이상 가지고 있을 경우 보유 사유, 자사주 추가 매입 계획, 자사주 소각·매각 계획 등 구체적인 활용 계획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번 방안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금융위 자문 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기업 경영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뿐 아니라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자사주 소각이 일률적으로 강제되면 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재계에서는 포이즌필·차등의결권 등 기업 경영권 방어 제도 개편부터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경영권 침해 등이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에 대해 저가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날 김 부위원장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같은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기업 경영 활동을 위한 실질적 수요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자사주에 대한 규제 자체가 인적분할을 막는 결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미 규제로 아무도 물적분할을 안 하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자꾸 건드리면 인적분할 시스템도 망가질 수 있다”며 “자사주가 있어야 주가도 부양할 수 있는데 규제가 늘면 풍선 효과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