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대형 헤지펀드를 비롯해 글로벌 국부펀드 일부가 한국 증시의 투자 비중을 축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초부터 기관투자가들이 7조 원가량을 투매한 가운데 장기 투자에 치중하는 외국인도 투자금의 상당액을 회수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는 올 들어 코스피가 5.96%(31일 기준), 코스닥은 7.77% 빠져 주요국 증시 가운데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지배구조, 배당 체계 등을 주주 친화적으로 개편하고 큰손 투자자의 신뢰를 제고할 정책 마련 등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한다.
31일 코스피 시장은 전일 대비 0.07% 하락한 2497.09, 코스닥은 2.40% 빠진 799.24로 각각 마감했다. 이날 하락은 기관이 1270억 원어치를 매도한 것이 결정타였다. 특히 코스닥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처음으로 800선이 붕괴됐다.
맥을 못 추는 한국 증시에는 심각한 수급 문제가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의 공매도 전면 금지를 계기로 국부펀드 등 일부 외국계 기관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장기 투자자금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중국에서 외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지는 와중에도 올 들어 국내 증시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7820억 원(삼성전자(005930) 대주주 일가 블록딜 물량 2조 1689억 원 제외)에 불과하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롱쇼트(매수·공매도) 전략이 불가능해지자 한 미국계 대형 헤지펀드가 국내 비중을 대거 줄이고 일본과 인도로 자금을 배분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기관투자가는 한술 더 뜬다. 올해 들어 6조 8905억 원어치를 처분했다. 증권 업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상장사의 혁신 유인, 재형저축 부활 등은 (투자 기반 확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편으로 공매도 금지 등 모르핀 주사 같은 충격요법보다는 시장에 신뢰를 주고 거래를 늘릴 세제 혜택 등에 열린 접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