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이 중국 주재 대사들을 초청한 연·신년 행사에서 외교 성과를 거론하면서도 한국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주임은 춘제(春節·중국의 설) 연휴를 앞두고 전날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2024년 신년 리셉션을 개최해 지난해 외교 정책을 회고하고 올해 정책 방향을 공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 자리에 중국 주재 각국 외교사절과 국제기구 대표·배우자, 중국의 부문별 관계자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도 참석했다.
왕 주임은 축사에서 "2023년 우리는 팬데믹 장벽을 넘어 교류의 귀중함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면서 △강대국 △아시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 △중동 등으로 구분해 작년 한 해 중국 외교 성과를 나열했다.
‘강대국’ 부분에선 미국과 러시아, 유럽이 거론됐다. 왕 주임은 "(작년 11월) 중미 정상회담은 '샌프란시스코 비전'을 열었다"며 "양국 관계가 하락을 멈추고 안정을 되찾은 것(止跌企穩)은 세계의 보편적 기대에 들어맞는다"고 했다.
러시아에 대해선 "신형 강대국 관계의 본보기를 만든 것은 글로벌 전략적 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왕 주임은 이어 "우리는 '친성혜용'(亲诚惠容·친하게 지내고 성의를 다하며 혜택을 나누고 포용한다)을 실천하면서 '아시아의 집' 건설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됐다"며 중앙아시아·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과 주변 국가와의 관계도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 관해선 "전략적 호혜 관계를 전면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작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1년 만에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언급이다.
또 작년 11월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개선에 나선 호주에 관해선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 궤도로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왕 주임은 아시아 외교 활동을 언급하면서 한국 관계 문제는 특별히 거론하지 않았다. 이미 정상회의 개최를 합의한 한중일 협력 분야도 언급에서 빠졌다.
이를 두고 왕 주임이 소개한 국가·지역이 작년 한 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직접 왕래가 이뤄졌던 곳들 위주인데, 한중 간에는 정식 정상외교가 없었기 때문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작년 11월 APEC 당시 마주쳐 악수하고 3분가량 대화를 나눴지만, 양자 정상회담은 조율 끝에 불발됐다.
동시에 최근 들어 다소 소원해진 한중 관계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국이 협력을 강화하면서 최근 한중 양자 관계에서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꼽아온 대만·남중국해 등 문제를 둘러싼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 중국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외신 인터뷰 등에서 대만·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달 19일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한중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도 한국이 '상호 존중에 기반한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 발전'이라는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힌 데 비해, 중국은 사후 보도자료에서 "대만과 해양 등 중국의 핵심적이고 중대한 우려 문제에 대해 재차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책과 입장을 거듭 밝혔다"며 이견이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새 외교장관이 임명되면 관례로 이뤄져 온 양국 간 전화 통화도 늦춰지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임명된 다음 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처음 통화한 데 이어 현재까지 일본, 호주, 베트남 외교 수장들과 연이어 전화로 인사를 나눴지만, 3주가 지난 이날까지 한중 외교장관 간 통화가 이뤄졌다는 소식은 발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