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4일 발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금융사에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자체 배상안을 공개적으로 주문한 점이다.
금감원은 최근 진행한 실태·현장 조사를 통해 상당한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했다. 이 원장 역시 이날 “부적절한 판매가 있었던 경우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부터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 등 7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ELS 판매 관련 조사를 실시했다. 이 원장은 “암 보험금을 수령했거나 노후 보장용 자금을 가져온 사람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투자하도록 한 게 확인됐다”면서 “가까운 시일 내 돈이 필요한 게 명확한 사람에게 원금 손실 상품을 권유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부 증권사는 창구로 찾아온 투자자에게 스마트폰을 활용해 비대면 판매를 진행한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또 일부 은행은 금융위기 직후인 과거 10년 평균 수익률 기준으로 상품을 안내해 ‘과거 20년 기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소비자를 생각하고 한 것인지, 아니면 눈앞에 보이는 수수료에 급급한 것인지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설 이후 2차 현장 조사를 추가로 실시해 이달 중 신속하게 결론을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금융 당국은 불완전판매 사실이 확정적인 만큼 공적 절차를 거친 배상보다 금융사들이 먼저 나서 신속하게 피해를 배상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2일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ELS 관련 분쟁 조정과 민원 신청 건수만 약 3000건에 달한다. 이 원장은 “2차 현장 조사를 마친 후 이달 내 (당국의) 분쟁 배상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라면서 “공적 절차 외에도 금융사가 자율 배상하면 어려운 처지의 금융소비자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적 배상 절차에 앞서 민간 금융사들이 먼저 나서면 피해자들을 빠르게 구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당국이 금융사를 향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지만 실제 배상이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가입자의 90%가 투자 경험이 있었던 터라 “원금 손실 가능성을 몰랐다”는 투자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시중은행에서 자산관리 업무를 맡은 한 임원은 “문제 있는 사례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불완전판매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며 “당국 입김에 배상안을 내놓을 수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투자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배상을 받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불완전판매가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배상금을 내놓는다면 자칫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 원장은 ELS의 은행 판매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은행의 경우 소규모 점포에서도 ELS를 판매하는 게 바람직한지, 자산관리를 하는 프라이빗뱅킹(PB) 조직이 있는 은행 창구를 통해 하는 게 바람직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금융 당국의 책임론에 대해 “당국도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에 대해 충분히 통제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어 국민들께 사과드릴게 있으면 드려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해외 투자은행(IB) 등에 대한 불법 공매도 조사와 관련해서는 “2건을 밝혀낸 게 있고, 추가로 2건을 넘기고 있고, 추가로 조사하는 것들이 훨씬 많이 있다”면서 “검찰과 긴밀한 협조하에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차입 공매도가 불가능한 정도의 전산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확실한 부작용 차단 조처가 구축되지 않으면 재개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