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유화에 덧칠하듯…연극·그림 등 융합한 하나의 장르 만들고파"

[이사람]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유화를 그릴 때는 색깔을 덧칠합니다. 더 칠하고 또 칠하고…이 세상에 만들어질 수 없는 색을 만들게 되니 유화는 굉장히 깊이가 있고 오래갑니다. 제가 하는 작업들이 연극도, 뮤지컬도, 음악도, 그림도, 사진도, 애니메이션도 아닌, 모두 융합된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가는 게 제 소망입니다. 그 작업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죠.”



드라마 ‘인간시장(1988년)’의 장총찬, ‘여명의 눈동자(1991년)’의 장하림, ‘모래시계(1995년)’의 강우석 등으로도 유명한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에게 붙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올해로 배우 경력 46년 차인 그는 교수, DJ, 사진작가, 무용수(한국 남자 현대무용수 1호)까지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틈틈이 해외 봉사 활동도 빠지지 않는다. 2022년에는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공연에 매진했고 지난해에는 미국 LA와 국내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올해는 다음 달 14일부터 방송하는 KBS 주말 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에 아버지 역할로 출연한다.

-배우 경력 46년차해마다 변신

1인극 '콘트라바쓰' 하반기 세번째 버전

내달 KBS 주말드라마 출연 "새 기회로"

국내외서 사진전·해외봉사·교수직까지

"그린마일 걸어가듯 숨쉬는 동안 계속 도전"

이러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는 사형수다. 지금 제일 젊고 찬란한 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그린마일(사형수가 감방에서 나와 사형집행실까지 가는 복도)을 걷고 있다.” 박 이사장은 이러한 문구가 쓰인 100년짜리 달력을 앞에 두고 지나간 날은 매직으로 하나하나 지운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서울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그린마일을 숨 쉬며 걷는 동안은 계속 노크하고 도전하려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올 하반기에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콘트라바쓰’의 세 번째 버전을 공개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 공연을 위한 최종 리허설인 셈이다. 박 이사장은 “대사 자체를 훨씬 더 줄이면서 연주나 춤을 많이 늘린 중간 완성의 개념”이라고 귀띔했다.

콘트라바쓰는 거대한 오케스트라 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자의 삶에 빗대어 이 시대에 소외받는 이들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초연(2020년)할 때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두 번째 공연(2022년)할 때가 굉장히 달랐다. 처음에는 전화기·꽃·소파 같은 간단한 소품이 있었으나 두 번째 무대에서는 오직 하드케이스 콘트라베이스 하나만이 무대 위에서 그와 함께했다. 사각의 무대는 15도 정도 기울였다. 공연 러닝타임도 95분 정도로 약 20분 정도 줄였다.

박 이사장은 “우리 말로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유럽에서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니 더 미디어적이고 넌버벌적(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해 이야기를 꾸미는)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최근 박 이사장은 ‘건강하게 네 번째 성년을 잘 사는 방법’을 주제로 국립암센터에서 강의했다. 그는 스스로 네 번째 성년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1959년생인 박 이사장은 “몇 년 전 환갑을 맞았는데 ‘환갑’이라는 단어가 불쾌하면서도 진부하고 듣기 싫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성년을 20년 단위로 나눠 사회적 동물로 사람들과 더불어 배려하고 소통하는 첫 번째 성년, 의무교육을 벗어나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완성하기 위해 도전하는 두 번째 성년, 도전을 완성해나가면서 숙성시키는 세 번째 성년 등으로 구분해 정의했다.



박 이사장은 “문화·예술·무용·연극 등 평생 외길을 걸어오며 완성시킨 내 분야를 국가·사회·제자·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여건에서 예술 활동을 하도록 기여하며 환원하는 것이 네 번째 성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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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서울문화재단은 그가 2021년 10월 취임한 뒤 아티스트들에게 더 큰 힘이 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대학 때 배웠던 전공을 지금까지 숙성·심화시키면서 한번도 그 작업에서 이탈해본 적이 없다”며 “무대에 오르는 플레이어로 46년의 개런티 된 시간을 통해 이런 지원은 좋을 수 있겠다 또는 무의미하다, 이런 방법은 힘을 줄 수 있다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예술하기 좋은 서울 위해 힘보태

문화예술포럼 발족해 미래 방향성 제시

서울예술상 신설, 신인·원로 지원 세분화

대학로 공공극장 '쿼드' 실험적 공연 확대

특히 그는 “예술가들이 예술 하기 좋은 도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고급 예술을 즐기기 좋은 도시, 더 나아가 약자와 동행할 수 있는 ‘매력특별시’ 서울로 가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박 이사장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의 미래 가치 담론을 형성하는 장인 ‘서울문화예술포럼’을 발족하고 회장을 맡았다. 포럼을 주재하고 ‘서울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 ‘기후위기와 문화예술’ 등의 주제를 다루며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예를 들어 엔데믹 시대에 광화문에서 청와대·송현녹지광장·북촌·서촌·대학로까지 어떻게 하면 쾌적하고 접하기 쉬운 ‘문화예술 둘레길’을 조성해갈지 현실적인 고민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예술상을 신설해 연극·음악·무용·전통·시각 등 5개 분야에서 우수 작품을 발굴했다. 이달 2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제2회 서울예술상’에서는 시상 규모를 더 확대했다. 그는 “미완의 신인부터 무대에서 열정을 잃지 않은 원로까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세분화했다”며 “미처 살아나지 못할 뻔했던 작품들을 대중과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시 문화예술 업계의 어려움도 산적해 있다. 대학로의 위기가 대표적이다. 최근 30여 년간 운영되며 대중문화의 산실로 여겨져온 소극장 ‘학전’이 폐관될 위기에 놓이는 등 대학로 소극장들은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1조 매출’ 시대를 맞이한 공연계의 호황에 앞서 순수예술의 뿌리인 소극장이 흔들린다는 점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박 이사장은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처음 연기에 입문했다. 그는 “학전 소극장 같은 공간들은 저에게 향수가 있는 곳이다. 예술을 잘 모르던 시절에 그곳에서의 공연들은 저를 스스로 채찍질하게 만들었다”면서 “그런 향수 때문에라도 공간들이 유지돼야겠지만 그럴 수 없던 한계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공공극장은 민간의 어려움을 나눠 짊어질 공간이다. 대학로에도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소극장이 있다. 대학로 쿼드(QUAD)는 옛 동숭아트센터의 동숭홀을 리모델링한 372석 규모의 소극장으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 예술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해 주목받는 연출가인 정진새 연출의 ‘신파의 세기’, 신유청 연출의 ‘더 웨일’ 등이 쿼드에서 상연됐다. 박 이사장은 “쿼드는 돈을 벌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라며 “무료로 대관해주거나 좋은 공연들은 다수 초청해야 한다. 민간이 할 수 없는 사치스러운 시도를 하면서 좀 더 좋은 예술을 공급하고 끊임없이 그 공간이 관객들로 붐비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KBS 주말 드라마 하면 시청률 40~50%는 기본이었지만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를 맞아 위기감이 크다. 박 이사장은 “이번 드라마가 무너지면 더 이상 KBS 주말 드라마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부담도 있다”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어떤 세상이 열릴지 불투명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설레는 상상과 이에 걸맞은 미래가 있어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역동적인 미래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원로 배우 신구와 박근형이 뭉쳐 매진 사례를 기록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한 박 이사장은 “누구에게나 있는 고도는 기다림이자 희망·용기여서 요즘 시대에 더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며 “미래가 불투명한 세상에서 앞으로 다가올 예술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He is… △1959년 대구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 △1986년 MBC 18기 공채 탤런트 △2008년 첫 사진 전시회 ‘어 모놀로그’ △2012년 서울예술대 연극학과 교수 △2012년 한국국제협력단 홍보대사 △2018년 상명대학교 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 예술학 박사 △2018년 국립암센터발전기금 후원회장 △2020년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2021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2023년 LA 사진전 △거창국제연극제 조직위원장 △서울예대 공연학부교수 △국가교육위원회 전인교육특별위원 △제주국제드론필름페스티벌 조직위원장


황정원 기자·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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