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외국인투자가가 대형주는 물론 코스닥에 선물 상품까지 매집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매수 행태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외국인이 증시 전반을 부양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의지를 높게 보고 저평가 종목뿐 아니라 기술·성장주까지 쓸어담으면서 지수 상승 자체에 베팅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코스닥지수는 나란히 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자산 대비 주가가 낮은 업종이 아닌 기술주·성장주 등이 대거 강세를 기록한 점이다. 미국에서 불어온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ARM발 인공지능(AI) 특수 기대감도 한몫했지만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코스피뿐 아니라 코스닥 시장의 제값 받기도 겨냥하고 있다는 투자자의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코스닥은 2.25% 올라 근 한 달 만에 845선에 안착했다. 지난달 말부터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으로만 쏠리던 시장 자금의 흐름이 설 연휴를 기점으로 기술·성장주로 분산되고 있다는 평가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서는 삼성전자(005930)(1.48%), SK하이닉스(000660)(5.04%),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2.82%), 기아(000270)(3.53%), 셀트리온(068270)(4.40%), LG화학(051910)(0.11%) 등이 올랐고 LG에너지솔루션(373220)(-0.13%), 현대차(005380)(-0.40%),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3.31%), 네이버(NAVER(035420)·-0.49%), 삼성물산(028260)(-0.19%) 등은 내렸다.
증권가에서는 외국인이 증시 상승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인이 2월 들어 이날까지 7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 4000억 원어치 이상의 순매수액을 기록한 것은 월간 역대 최대 매수를 기록한 2013년 9월 때보다도 월등히 빠른 수준이다. 당시 외국인은 2~10일 7거래일 동안 3조 194억 원어치를 순매수해 그 규모가 이달의 절반 남짓밖에 안 됐다.
특히 외국인은 이달 들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코스피 시장에서 매수 우위를 보이고 있다. 코스닥의 경우도 외국인은 이달에만 5165억 원을 매입했다. 증권가에서 외국인이 역대 월간 최대 순매수 기록을 갈아치울 공산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외국인들이 적어도 한국 정부가 4월 총선 때까지 주가 관리를 할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주식을 매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매매 규모와 전략이 지난달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점도 예의 주시할 포인트다. 외국인들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코스피에서 3조 4829억 원 순매수하면서도 코스닥은 5311억 원어치를 팔았다. 코스피200 선물도 4조 9748억 원어치를 매각해 전체 지수 하락을 점치거나 현물 순매수를 헤지(위험 분산)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반면 이달에는 코스닥뿐 아니라 코스피200 선물도 이날 9469억 원을 비롯해 7거래일간 3조 5681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국내 증시의 상승 가능성에 더 베팅한다는 의미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 전 세계적인 AI주 부각에 따른 관련주 동반 랠리 등에 힘입어 한국 기술주도 혜택을 받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AI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5조~7조 달러(약 6500조~9100조 원)의 투자금을 유치한다는 소식도 반도체주 강세에 기름을 부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완전히 구체화될 때까지 당분간 외국인 매수세가 긍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선물 시장에서도 순매수하고 있는 점이 증시 하방 경직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저PBR 종목은 상승 강도가 약해지거나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는 반면 이제는 기술·성장주들이 오히려 부각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가 모처럼 재평가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저PBR주와 성장주 간에 순환매가 일어나는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