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을 막아서는 미국 정부의 행보가 자국 내에서도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각국이 미국 빅테크에 견제구를 던지는 와중에 자국 기업 발목 잡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면서 반기업 정책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리스크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12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리나 칸 FTC 위원장과 좌파 단체들이 미국 무역정책을 ‘하이재킹(Hijacking·탈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WSJ는 “칸 위원장이 의회에서 의제를 통과시킬 수 없게 되자 외국 정부가 미국 기업에 반무역 정책을 강요하도록 하면서 자유로운 디지털 무역을 방해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규제에 실패하자 해외 경쟁 당국의 빅테크 규제를 옹호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실제 FTC는 ‘빅테크 저격수’라고 불리는 칸 위원장이 임명된 후 메타(옛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 중이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FTC의 소송 목록에 오른 기업 대부분이 빅테크지만 소송의 대상이 된 세부 부문에서는 독점력이 현저히 떨어진 탓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소송에 나선 결과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FTC는 메타가 헬스케어앱 제작사 ‘위드인’ 인수로 VR 시장을 독점하려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VR 시장 성장세가 더딘 데다 기기 제조사인 메타가 앱 개발사 인수로 독점력을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MS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를 막아서려는 소송의 경우 법원으로부터 “FTC가 (MS 경쟁사인) 소니의 주장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을 듣고 기각됐다. MS는 콘솔 게임 시장에서 소니에게 밀리는 처지고 액티비전블리자드 게임도 대체재가 많다는 게 법원의 논리다. 아마존을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도 전망이 좋지는 않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마존의 미국 내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30%를 밑돈다.
자국 빅테크 기업들을 타깃으로 한 ‘무리수’가 반복되면서 민주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월스트리트의 민주당 후원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재선할 경우 칸을 해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칸 위원장의 ‘자기 정치’가 이어지면서 반독점 규제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매거진은 “FTC 내부에서도 메타·MS 사건 패소 이후 칸의 전략에 대한 노골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반독점 운동의 정치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칸 위원장의 임기가 실패로 판명될 경우 반독점 운동에 ‘실존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