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55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저성장 구조의 고착화 조짐과 고물가·고금리의 장기화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총선 결과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은 14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나눠먹기나 하자는 정치로는 성장과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면서 “나랏돈을 허투루 쓰고 저출산 대책은 소홀히 해서 나라를 소멸 위기에 처하게 한 정치인의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 경제 관료와 대형 은행 수장, 경제단체장 등을 두루 지낸 박 이사장은 “정년제·호봉제는 이제 현실에 맞게 손볼 때가 됐다”며 노동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어 “외국 기업들이 투자할 만한 나라를 만들지 못하면 해외로 나간 우리 기업들이 돌아오게 할 수 없다”며 리쇼어링 활성화를 위한 투자 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경제 문제는 경제 논리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기를 바란다. 역대 정권과 정치권은 그동안 정치 논리로 경제를 바라봤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득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경제 문제를 처리해왔다.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금지하는 법이 나온 이유가 뭔가. 택시 업계에서 반대하니까 국회가 앞장서서 입법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공인중개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직방(부동산 중개 서비스) 금지법’도 발의했다. 국회의원들은 농민도 위하고, 노동자도 위하고, 택시기사와 공인중개사도 위하지만 전 국민을 위하는 의원은 보기 힘들다.
-정치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민들이 일부분의 이익만 챙겨 표나 얻으려는 후보들을 걸러내고 나라 전체 입장에서 옳은 판단을 하는 후보들을 선택해야 정치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정치·사회 논리는 나누기 논리이고 경제 논리는 곱하기 논리이다. 목돈이 만들어지고 투자가 이뤄지게 하는 것이 경제다. 그저 나눠먹기나 하자는 정치로는 성장과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후보들에게 표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일을 잘한 현역 의원 출마자와 잘할 것 같은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특히 현역 의원 출마자들 가운데 재임 중 어떤 나쁜 법안을 만들었고, 어떤 낭비성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참여했는지 낱낱이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철도’에 들어갈 돈이 최소한 6조~7조 원이나 된다고 하는데도 총선 득표를 위해 예비타당성 면제 특별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데 앞장선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새만금과 무안·양양·울진·가덕도 공항 등에 헛돈을 낭비하는 등 나랏돈을 허투루 쓰고 저출산 대책은 소홀히 해서 나라를 소멸 위기에 처하게 한 정치인들의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인구 급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처 방안은.
△인구 대책을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지만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 힘든 일이다. 정부는 이 점을 유념해 동원 가능한 재원을 총동원해 출산 장려에 쏟아부어야 한다. 출산 장려책은 지금부터 출산하는 아이들은 물론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대학 학비를 다 지원한다는 식으로 통 크게 나갈 필요가 있다. 국가 소멸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인데 국가·지방 재정을 따질 여유가 없다.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온갖 저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출산율은 계속 하락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썼다는 380조 원의 실체부터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청년 임대주택 예산 등을 되는 대로 갖다 붙인 가공의 숫자로 정부의 노력을 부풀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전체 저출산 예산을 ‘하나의 주머니’에 담아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돈은 뭉쳐야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부처별로 흩어진 저출산 관련 정책과 재원을 한데 끌어모으고 어느 한 부처에서 확실하게 틀어쥐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연금 개혁, 의료 개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놓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효율성을 높이려면 각종 정책 수단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에 대통령이 직접 임무를 부여하면 좋겠다. 위원회 조직은 실행력에 문제가 있는 조직이므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인구 감소 문제 해결책으로 이민청 설치가 논의되고 있는데.
△출생률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은 이민 정책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일까. 세상은 이미 인구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처럼 좋은 대학이 있어야 세계 각국으로부터 우수한 인재들이 유학하러 몰려든다. 취업이나 사업을 하기 좋은 여건이라야 공부를 마친 사람들이 남아서 인구가 된다. 14년째 대학 등록금을 동결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우수 인력 유치도 출산율 회복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므로 단호한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 노무자들도 혼자 와서 몇 년만 있다가 가게 해서는 숙련공을 만들 수도 없고 본국에 송금만 하게 만들어 내수 위축을 막을 수 없다. 가족을 데리고 와서 오래 살게 해야 우리 인구화가 가능할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의·정 갈등이 크다.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하는 것은 당위다. 그러나 우격다짐만으로 하지 말고 의료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국가가 강력하게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 수가 정상화 같은 정책 변화가 요구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의료 산업이 해외 환자도 유치하고 해외 진출도 확대하고, 바이오·의과학 분야의 창업을 촉진하는 등 윈윈 정책을 펴야 할 시점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김에 전국 의대에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유학을 받아서 유능한 의사를 키워 본국으로부터 환자를 유치하게 하고, 본국에 돌아가서는 한국의 의료기기·의약품 등 의료 전방산업의 수요를 늘리게 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한데 국내 환자의 임상 수요만을 따지고 있으면 안 된다.
-노동 개혁을 다짐한 윤석열 정부의 개혁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자리 창출보다는 이미 일자리를, 그것도 가장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조를 가진 노동자’들을 위하는 구조의 노동법 규제를 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미 일자리가 있는 노동자를 위한 모든 조치는 아직 취직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노동 규제를 취업하지 못한 노동자, 노조 없는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바람직한 노동 개혁의 방향은.
△이미 취직한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새로 취직할 사람의 이익을 저해하는 구조가 고질적 병폐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회사가 계속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인 정년제와 나이 들수록 고임금을 받는 호봉제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해고가 자유롭거나 연봉제 같은 탄력적 임금 체계가 자리 잡으면 정년은 필요 없게 된다. 인구와 노동력 부족 시대, 수명 연장 시대에 정년이 없어도 쓰일 사람은 계속 쓰인다. 정년은 연장할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 신입 사원 세 명분의 임금을 가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이 희생 당하는 제도를 언제까지 계속 둬야 하는가. 정년제와 호봉제를 현실에 맞게 손볼 때가 됐다.
-정년제와 호봉제를 수술하려면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물론 급격한 제도 변경이 당장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대 노총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 때문에 그들의 기득권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에 개별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분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이를테면 기존 직원의 기득권은 그대로 두는 대신 신입 사원들에게는 연봉제와 성과급, 직무급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임금 체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평생 직장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젊을 때 덜 받고 나이 들어 더 받는 호봉제는 지금 신입 사원들에게는 결코 유리한 제도도, 원하는 바도 아니다. 취업 규칙이 하나만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젊은 신입사원들을 위한 임금체계와 취업규칙을 만들어 제시하는 시도를 노사 양쪽에서 해 줬으면 좋겠다.
-정부가 추진하는 리쇼어링 활성화 정책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연 300억 달러인 반면 해외로 나가는 한국 기업들의 직접투자는 1000억 달러로 3배 이상 차이 난다. 이는 정부가 아무리 국내 기업의 리쇼어링을 강조해봤자 소용이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외국 기업들이 투자할 만한 나라로 만들지 않고는 해외로 나간 우리 기업들이 돌아오게 할 수 없다. 우리 기업, 외국 기업을 가리지 않고 투자 여건을 개선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 기업에 주는 혜택을 늘리고 국내 기업에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할 것이다.
◆He is…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서울대 법학 석사, KAIST 산업공학 석사,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17회에 합격한 뒤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과 차관보 등을 거쳐 제1차관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쳤다. 이후 우리금융지주 회장, 청와대 경제수석,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사단법인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