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금액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세부적인 비용 책정 이유를 분명히 고시할 필요가 있어요. 불필요한 서비스 등도 은근슬쩍 강요하다시피하는 것도 부담스럽구요.”(30대 산모 장 모 씨)
출산 후 필수 코스가 돼가고 있는 ‘산후조리 서비스’의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산모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불투명한 가격 고시는 결국 서비스 이용료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출생률 저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평가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이용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 이와 관련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8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 지역 산후조리원 124곳 중 기본 서비스 요금을 게시하지 않은 업체는 29곳이었고 부가 서비스 요금을 게시하지 않은 업체는 총 49곳이었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산후조리업자는 제공되는 서비스의 내용과 요금 체계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시해야 하며 이를 어기거나 거짓으로 게시한 경우 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실제 산후조리원 이용 산모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비용’ 문제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서울경제신문이 100명의 산후조리원 이용 경험이 있는 산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산후조리원 상담 시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시킨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42%에 달했다. 이 중 ‘과도한 추가 비용’에 불합리함을 느낀 비율은 40%로 가장 많았으며 ‘불투명한 정보 공개’가 17%로 뒤를 이었다.
이들이 꼽은 불합리한 비용의 상당수는 기본 서비스 이외 추가 비용의 과도한 요구였다. ‘산후조리원 비용이 과도하게 비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산모 중 약 29%는 과도한 비용이라고 느낀 주요 이유로 ‘마사지’ 관련 내용을 전했다. 마사지를 받지 않으려고 해도 기본 프로그램에 비싸게 책정됐기 때문에 강제로 해야 하거나 마사지 비용과 같은 추가 발생 비용이 너무 많다는 증언이 줄을 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간호학과 교수는 “효과가 미미한데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면 필수로 할 이유는 없다”며 “더 이상 집에서 산모를 케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간 산후조리원들이 산모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들을 관리·감독할 정부의 평가 지표가 여전히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을 뿐 아니라 불량 업체에 대한 이렇다 할 규제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부터 △산후조리원 평가제도 인지도 제고 및 참여 활성화 △평가 수용도 향상 및 평가 기준 이해도 증진 등을 위해 ‘산후조리원 컨설팅 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산후조리원 평가제도 의무화에 나선다는 입장이며 올해 상반기에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 개선 방안 과제 중 사내 표준 작성 가이드 보급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평가 지표안을 확인한 결과 인력전문성·시설안정성·운영·감염예방·부모교육·신생아돌봄 등에 대한 평가 기준이 포함됐을 뿐 가격 공시 여부 등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아울러 2011년 대대적 단속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정을 위반한 산후조리원에 과징금을 적용한 이후 현재까지 복지부에서 3년에 한 번 산후조리원 현황 관련 조사를 할 뿐 강력한 처벌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가 지표도 뒤늦게 도입할 방침이지만 처벌의 근거로 활용될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도 산후조리원 평가의 제도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산후조리원 평가제도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기본적으로 질 평가가 수반돼 이용자에 대한 편익이 증진돼야 한다고 봤다”며 “그간 복지부에서 산후조리원 컨설팅을 해왔는데 이게 어느 정도 이뤄졌다면 공식적인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발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단법인 한국산후조리원협회 측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김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했다. 협회는 “지난해 추경호 부총리는 산후조리원 평가제도를 원만히 업계에 정착시키기 위해 평가 준비 부담 경감 및 참여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며 “정책방향이 발표된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산후조리원 평가에 대한 지원 사항은 빠진 채로 산후조리원 평가 의무화만 내용에 담았다”고 비판했다.
협회는 평가제도의 시행은 산후조리원 서비스 요금의 인상으로 이어져 이용 산모들에게 비용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산후조리원 평가를 위해 조리원 측에 추가 인력 고용이 필요하고 평가에 필요한 물품 준비 등 고정비용이 증가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당연히 가격의 90% 이상은 인지하고 갈 수 있도록 공시가 돼야 한다”며 “복지부에서 지자체에 대해 업체들이 정확히 가격을 고지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하고 신고 창구 마련을 통해 ‘미이행 발견 및 신고’와 ‘처벌’이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