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언포기븐'과 '퍼펙트 나이트'로 국내·외로 좋은 성과를 거둔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이 신보 '이지'로 새해를 시작한다. 그간 당당함과 자신감을 내세우며 질주하던 이들은 처음으로 내면의 고민과 불안을 털어 놓으며 새로운 이미지와 콘셉트, 음악을 꾀한다.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걸그룹 르세라핌의 미니 3집 '이지(EASY)'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가 개최됐다. 멤버들은 동명의 타이틀곡과 수록곡 '스완 송(Swan Song) 무대를 선보이고 앨범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리더 김채원은 무대에 올라 "정규 1집 '언포기븐(UNFORGIVEN)' 이후로 9개월 만이다. 작년에 첫 단독 투어도 하고 첫 음악 방송 1위도 해 보면서 감사한 일이 많았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르세라핌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컴백 소감을 전했다.
르세라핌은 대표곡 '피어리스(FEARLESS)', '언포기븐', '안티프래자일' 등으로 그룹의 정체성을 굳혔다. 욕망을 긍정하고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내세운 것. 이번 신보에서는 목표를 향해 자신감 있게 달려 나가던 이들의 이면을 비춘다. 지금까지 이룬 대기록 뒤에 존재하는 고민의 밤, 셀 수 없는 노력을 조명했다.
카즈하는 "그간 당당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면 이번에는 멤버들의 내면에 집중한 앨범이다. 그만큼 솔직하고 인간적인 르세라핌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앨범이 완성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채원은 "르세라핌의 당당한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고민과 불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 앨범이다. 이번 앨범을 통해 르세라핌의 소화력은 한계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신했다.
르세라핌은 지난해 발매한 정규 1집 '언포기븐'과 첫 영어 디지털 싱글 '퍼펙트 나이트(Perfect Night)'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언포기븐'은 발매 첫날 12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역대 걸그룹 1위 기록을 만들었고, '퍼펙트 나이트'는 빌보드의 '글로벌 200'에서 역주행하며 10주 이상 차트인했다. 아울러 르세라핌은 지난해 일본에서 한화 약 193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오리콘 연간 신인 랭킹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쓰기도 했다. 이렇듯 탄탄대로를 걷게 된 이들은 왜 2024년 2월, 이 시기에 내면의 불안과 고민을 꺼내 드는 선택을 한 걸까.
이와 관련해 사쿠라는 "갓 데뷔했을 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다. 활동하다 보니 큰 사랑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음 앨범을 내면 이렇게 또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불안감도 생기고,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며 "르세라핌은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음악에 담는 그룹이다 보니 이런 날 것의 감정을 앨범에 담은 게 오히려 멋있다고 느껴졌다"고 전했다.
르세라핌의 다양한 고민과 불안 중 하나는 '퍼펙트 나이트'의 대성공에 따른 부담감에서도 비롯됐다. 사쿠라는 "'퍼펙트 나이트'가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지'를 그때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음 앨범이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저희는 늘 최선을 다해 해왔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해낼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했다"고 밝혔다.
사쿠라의 말처럼, 멤버들은 르세라핌을 통해 불안과 고민을 얻었지만 극복도 르세라핌을 통해 할 수 있었다. 허윤진은 "르세라핌이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저는 사실 되게 생각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사람은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당한 모습도 나이고, 불안과 고민을 가진 사람도 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런 생각을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고, 르세라핌을 통해 솔직해지면서 제 불안과 고민도 많이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타이틀곡 '이지'를 비롯해 음악과 퍼포먼스에는 '새로움'에 방점을 찍었다. 타이틀곡 '이지'는 그간 르세라핌이 시도하지 않은 트랩 장르의 곡이다. 퍼포먼스 역시 르세라핌이 새로이 시도하는 올드 스쿨 힙합 퍼포먼스를 택했다. 앞서 르세라핌은 '안티프래자일', '피어리스', '언포기븐' 등 강렬하고 중독성 넘치는 곡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이지'는 트랩과 R&B 장르가 어우러져 앞선 곡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다만 멤버들의 타이틀곡 만족감은 최상이다. 카즈하는 타이틀곡 '이지'를 두고 "처음 듣자 마자 힙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발매한 타이틀곡은 듣자 마자 강한 중독성이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따라부르게 되는, 은은한 중독성이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며 "저희 그룹의 특징이 독기라고 생각한다. '이지' 가사를 보시면 독기가 장난 아니다. 그래서 르세라핌 답다고 느꼈다"며 웃었다.
김채원 역시 "첫 소절 들었을 때 '찢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라고 밝혔다. 허윤진은 "첫 감상부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씻을 때도 듣고 차에서 이동할 때도 듣고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빌보드 '핫 100'에 올려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욕심을 냈다.
퍼포먼스 '역대 최강 난이도'다. 사쿠라는 "르세라핌 치고는 쉬워 보인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절대 절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안무를 통틀어 제일 어려운 것 같다"며 "타이틀곡 '이지' 가사가 퍼포먼스를 제대로 표현한 거 같다. 쉽지 않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쉬워 보이게끔 만들겠다는 뜻이다"고 밝혔다.
홍은채 역시 "곡의 느낌 때문에 춤이 파워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기 때문에 에너지를 보여주려면 모든 힘을 끌어 춤을 춰야 했다. 역대 르세라핌 안무 중 가장 힘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뮤직비디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됐다. 도자 캣, 위캔드 등 유수의 해외 아티스트와 합을 맞춘 니나 맥닐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김채원은 "해외 감독님과 협업은 처음이어서, 연출 콘티 촬영 각도 등 모든 게 새로웠다. 감독님이 리액션도 좋고 흥이 많은 분이어서 촬영 내내 즐거웠다. 춤을 직접 추는 분이다 보니 안무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더라. 퍼포먼스가 잘 담긴 거 같다"고 만족했다.
타이틀 곡 외에도 신보에는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믿는다고 말하는 '굿 본스(Good Bones)', 쉽지 않은 길도 직접 갈고 닦아 쉬운 길로 만들겠다는 타이틀곡 '이지', 무대 아래 피땀 어린 노력을 노래하는 '스완 송', 이 세상의 '위너'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스마트(Smart)',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을 담은 '위 갓 소 머치(We got so much)' 등 총 5개 트랙이 수록됐다. 멤버들이 수록곡 크레디트에 고루 이름을 올렸다.
특히 신보는 앞선 앨범에 비해 보컬 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작업이었다고. 사쿠라는 "(방시혁) PD님이 '이번 앨범은 보컬이 잘 나와야 한다. 오래 걸릴 거다. 미리 죄송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 녹음이 거의 끝날 때라 '왜지?'하면서도 욕심이 나서 열심히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랩 레슨도 받아가며 열심히 녹음했다"고 전했다.
홍은채는 "앨범에 다양한 장르가 실렸다 보니 녹음할 때 (방시혁) PD님이 곡마다 원하는 방향과 디렉팅이 달랐다. 저는 '얼음 공주처럼 불러주세요', '기분 안 좋은 사람처럼 불러 주세요'라는 디렉팅을 받았는데, 제가 원체 성격이 밝다 보니 얼음 공주에 대해 계속 물어봐 가며 녹음했다"며 웃었다.
한편 이들은 올해 미국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에 오른다. 블랙핑크에 이어 두 번째 초청이다. 이로써 르세라핌은 역대 한국 가수 중 최단 기간에 이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치는 단독 아티스트가 됐다.
이와 관련해 김채원은 "블랙핑크 선배님의 무대를 보며 '우리는 언제 저런 기회가 올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와서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저희 팀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아주 열심히 준비 중이다"고 귀띔했다.
한편 르세라핌의 미니 3집 '이지'는 이날 오후 6시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