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고, 과실이 땅에 떨어져 구더기가 꼬인 것을 먹지 말며 먼저 익어서 떨어진 과실은 독한 벌레가 숨어 있을 것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 (조선 요리 비법 564쪽)
우리 선조들은 식사를 할 때 감과 배 그리고 게의 조합을 위험하게 여겼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음식 궁합으로는 상극이라는 것이다. 이는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왕위에 있던 52년 내내 이복형이자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에 시달리게 한 단초가 됐다. 경종실록에 따르면 경종은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는데 원인으로 이틀 전 먹은 생감과 게장이 지목됐다. 당시 실록에서는 이를 두고 “의가(의학계)에서도 매우 꺼리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독살설에 신빙성을 더하기도 했다.
21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펴낸 ‘조선 요리 비법: 장서각 소장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역주’는 한글 요리서 고전 3종의 지혜가 모두 담겼다. 64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펴낸 책에는 주식방문 등 고전 3종의 내용들이 총망라됐다.
음식을 문화·인문학·역사학의 관점에서 연구해 온 주 교수를 중심으로 각 분야 학자 10명이 참여해 장서각 소장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했다. 주영하 교수는 “조선시대 요리책을 연구할 때 필요한 것은 ‘책의 문화사’라는 시선"이라며 “역주서가 국어학, 음식학, 생활사 연구에 이바지하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책 앞부분에 쓴 해제에서 이들 한글 요리서 3종의 특징과 구성, 다른 기관이 소장한 자료와 차이점 등을 분석한다. 요리법 항목이 몇 가지인지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장서각이 소장한 ‘주식방문’에 음식 이름이나 요리법 재료 등이 적힌 항목은 총 114가지이며, 이 중에는 병과(餠菓·떡과 과자)류가 35가지로 가장 많다.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 중인 ‘음식방문이라’ 내용을 살펴보면 요리법과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해야 할 일 등 110가지, 의료와 가옥 관련 내용 12가지가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밤을 구울 때 타지 않게 하는 방법에 대한 선조들의 고민도 담겼다. 책에는 “밤을 구울 때 그중 하나를 남이 모르게 손에 쥐어 감추고 구우면 모든 밤이 타지 않는다”며 “구우려는 밤마다 눈썹 위에 세 번씩 문질러 구우면 타지 않는다”고 조언해 웃음을 자아냈다.
‘언문후생록’은 조선 후기 음식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음식마다 따라다니는 미신도 흥미로운 요소다. ‘낙지를 먹으면 시험에 낙제한다’ ‘게(蟹)를 먹으면 시험에 떨어져[解] 고향으로 가야 한다’ 등 속설들도 당시 선조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은 "19세기 이후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요리서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음식문화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