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파운드리(주문생산) 본격 복귀를 선언한 인텔이 1.8나노급(18A) 첫 대형 고객사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영입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가 언급했던 ‘윈텔(윈도우+인텔)’ 연합 부활이 인공지능(AI) 칩셋·파운드리 공조로 구현되는 구도다. 인텔은 MS를 비롯해 총 150억 달러(약 20조 원)에 이르는 수주를 확보했다고 밝히며 삼성전자(005930)·TSMC와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21일(현지 시간) 인텔은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 첫 파운드리 컨퍼런스인 ‘IFS(인텔파운드리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2024’를 열고 MS로부터 18A 수주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행사장에 원격으로 등장한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가장 발전된 고성능·고품질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필요성이 인텔과 협력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펫 겔싱어 인텔 CEO는 “3년 전 파운드리 복귀를 선언했을 때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냉소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MS를 포함해 150억 달러의 수주를 확보하며 인텔이 AI 시대 가장 최적화한 파운드리임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올 1월 말 실적발표에서 지난해 4분기까지 100억 달러의 주문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던 점을 감안하면 MS를 포함해 두달간 50억 달러를 추가 수주한 셈이다.
MS는 인텔에 어떤 칩셋을 주문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업계는 MS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AI 칩셋 '마이아(Maia) 100' 또는 마이아 차기작을 인텔에 발주했을 것으로 본다. 인텔 18A가 이르면 올해 양산에 돌입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텔은 18A 웨이퍼를 공개하며 2025년 양산 계획을 밝혔으나, 이날 18A에서 생산한 자체 중앙처리장치(CPU) ‘클리어워터 포레스트’가 공장에 투입(Tape-out)됐음을 공개하며 양산 시점을 2024년 말로 수정했다.
이는 MS의 초거대 AI 전략에 인텔이 주요 파트너로 올라섰음을 뜻한다. 이날 오후에는 MS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행사장을 찾아 겔싱어 CEO와 대담한다. 챗GPT가 MS 클라우드 ‘애져’ 기반으로 작동하는 점을 떠올려볼 때 인텔 파운드리에서 생산된 반도체 칩셋이 챗GPT를 구동하게 되는 셈이다.
인텔은 이날 MS 외 ARM·지멘스·케이던스·시놉시스·앤시스 등 파운드리 주요 파트너사도 공개했다. 특히 모바일 CPU 시장에서 인텔과 경쟁 관계인 ARM이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스투 판 인텔 파운드리 총괄부사장은 “ARM과 인텔이 함께 서는 모습은 상상도 힘들었던 장면”이라고 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르네 하스 ARM CEO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즈를 MS 윈도우에 출시한다는 발표를 하는 듯하다”며 양사 협력이 이례적임을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칩스법)을 총괄하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이 원격 참석했다. 이날 러몬도 장관은 인텔이 기대하던 ‘100억 달러’ 지원금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인텔은 미국의 ‘챔피언십 기업’”이라며 “미 정부가 이토록 거대한 전략적 지원책을 발표한 것은 1960년대 우주경쟁 이후 처음으로 모든 반도체 칩을 미국에서 만들 수는 없겠으나 AI를 이끌 칩셋에 대한 리더십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텔은 이날 18A 이후 공정 로드맵도 발표했다. 4년간 5개 공정을 뛰어넘어 18A에 돌입하겠다는 2021년의 목표가 현실화 된 만큼 차기 공정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인텔은 최근 ASML로부터 도입한 반도체업계 첫 하이NA 극자외선(EUV)을 바탕으로 2027년까지 1.4나노급(14A)에 돌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삼성전자·TSMC가 2022년 발표한 로드맵과 같은 수준이다. 인텔을 이를 통해 2030년 삼성전자를 넘어서 세계 2위 파운드리에 오르겠다는 각오도 재확인했다. 겔싱어 CEO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80%가 동아시아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지를 북미와 유럽으로 돌려야 한다”며 “가장 안정적이고 탄력적인 생산망을 지닌 파운드리는 인텔”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