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에너지기구(IEA) 각료회의에서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정부와 무탄소(CF)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 라운드테이블 회의’에 영국·일본·캐나다·네덜란드·IEA 등 7개 주요 국가 및 국제기구의 대표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필자도 회의를 주재하며 “국가별 여건과 기업·산업계의 실정에 맞게 재생에너지·수소·원전 등 다양한 무탄소에너지를 폭넓게 활용해 효율적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자”는 ‘CFE 이니셔티브’에 대한 주요국들의 관심과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국제기구인 IEA는 우리나라와 함께 글로벌 CFE 활용 여건에 대한 공동 연구까지 개시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사실 ‘무탄소에너지’에 대한 국제적 공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미국은 ‘청정에너지’, 일본은 ‘비화석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무탄소에너지’의 활용에 주력해왔다. 최근 들어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돼 지난해 12월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 합의문에 COP 역사상 최초로 재생에너지 외에 수소·원전 등이 주요 탄소 감축 수단으로 함께 명시됐다. 또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가 인공지능(AI) 혁명을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듯이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도 AI·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재생에너지·수소·원전 등 다양한 무탄소 전력의 공급을 늘려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흐름이 이러한데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탄소 중립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오직 재생에너지만이 정답이라고 스스로 옭아매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 올라타고 활용할 수 있어야 우리의 이니셔티브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통용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탄소 저감이 어려운 철강·석유화학·반도체 등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해 중국과 비슷하고 일본(21%), 독일(19%), 미국(11%)보다는 한참 높아 탄소 중립 달성이 더욱 어렵다. 실리콘밸리의 온라인플랫폼, 월스트리트의 은행과 달리 우리 제조 기업들이 친환경 철강·플라스틱·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깨끗한 전기뿐 아니라 수소환원제철·바이오나프타와 같은 깨끗한 연료 및 원료도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의 무탄소에너지 활용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증 받을 수 있어야 우리 기업의 친환경 경쟁력이 더욱 배가될 수 있다.
CFE 이니셔티브는 어떤 에너지원이 옳고 그르다는 소위 에너지 공급 차원에서의 정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를 사용하는 우리 수요 기업들의 생존 문제이며 더 나아가 글로벌 탄소 중립 성패와 직결된 현안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후 운동가인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도 “이제는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목소리는 ‘수출·산업 발전’과 ‘탄소 중립’이라는 일견 매우 모순적인 결과물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절실한 외침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